"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끓어 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 (창 49:14-15)
위 구절이 보여 주듯이 야곱은 잇사갈이 노예가 될 것을 예언하였다. 그러나 신명기 33:19에서 모세는 잇사갈이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취하리라고 하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위의 두 구절은 서로 모순이 아닌가? 잇사갈의 실제 운명은 어느 것이었는가?
먼저 창세기 49:14-15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부터 알아보자.
잇사갈은 야곱의 예언대로 보기에 좋고 아름다운 땅을 얻었다. 잇사갈이 차지한 땅은 갈릴리 바다의 남서쪽 비옥한 땅이었다(수 19:17-24). 그러나 이런 눈에 보기에 좋은 땅과 비옥한 곳의 선택은 하와가 보기에 먹음직한 선악과를 보고 범죄에 빠졌고 롯이 보기에 좋은 곳을 택했다가 소돔 성의 멸망 때 비참한 운명이 된 것과도 같은 잘못된 선택이었다⑴.
따라서 그들은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억눌려 섬기게 될 것인데 그 말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의 노예 상태에 대해 쓰였다(참고, 출1:11; 2:11; 시 81:7). 또 노예처럼 힘들게 일한다는 말은 솔로몬이 강제로 부린 노예 같은 역군을 가리키는데 쓰였다(왕상 9:21). 여호수아 16:10에 따르면 가나안 사람들을 이 방법으로 그들을 섬기도록 만든 것은 이스라엘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야곱은 잇사갈이 스스로 노예처럼 일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리라고 예언한 것이다⑵.
문제는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이다. 구약의 어디에서도 어떤 지역적인 세력에 잇사갈의 종속을 언급한 곳이 없다. 더구나 사사기 1장에 가나안 족속들을 성공적으로 쫓아내지 못한 지파의 명단이 나온다(므낫세 27절, 에브라임 29절, 스불론 30절, 아셀 31절, 납달리 33절이다). 거기서도 잇사갈 지파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드보라의 노래에서는 잇사갈 지파가 전투에서 값진 공헌을 했다고 축하하고 있다. 더구나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은 그를 부끄럽게 하고 당황케 만든 아들들에게 심판의 선언을 하고 있는데 르우벤(4절), 시므온, 레위 뿐(5-6절)이다⑶. 그러나 증거가 전혀 없지는 않다. 므깃도의 왕에게서 애굽에 보낸 한 편지가 엘-아말라(El-Amarna)에서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야푸(Yapu)와 누리브다(Nuribda)에서 온 사람들이 슈넴(Shunem)에서 노예로 일했음을 언급하고 있다(ANET, 485, Letter RA 19, P.97) 슈넴은 잇사갈 영토의 한 부분이었으며(수 19:18), 야푸(Japhia)는 스불론의 근접 영토의 한 부분이었다(수 19:12). 따라서 이스르엘 평야의 동편에 있는 메마른 지역에서 목자나 목동으로서보다는 좋은 땅에서 농노로서 살기를 택한 스불론에서 온 사람들의 그룹에 의해 식민되었을 것이다(de Vaux, Early History of Israel, 664)⑷.
물론 이런 성경 밖의 자료가 이 본문에 예언을 확증 짓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초기 정착 단계에서는 이와 유사한 현상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 신명기 33:19의 의미를 살펴보자.
신명기 33:19에서는 잇사갈이 바다의 풍부한 것을 취하리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부에 대한 원천을 소개하는데 말하자면 바다의 부를 가리켰다⑸. 또 모래에 감추인 보화는 아마도 그들이 유리 공장을 갖게 될 것을 가리켰을 것이다⑹.
잇사갈과 스불론 지파 모두가 지중해에 접해 있지 않았으나 갈릴리 바다 근처에 잇사갈이 있었으며 스불론은 지중해에서 수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으므로 상인들이 바다의 생산품들을 가지고 두 지파 지역들을 왕래하였을 것이다⑺.
이처럼 두 구절을 살펴보면 잇사갈 지파는 창세기의 야곱의 예언과 후대에 모세의 예언대로 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두 구절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가이슬러는 두 구절이 서로 다른 때에 잇사갈 지파에서 성취된 예언이라고 보았다. 야곱은 잇사갈 지파가 그들의 재산 때문에 디글랏 불레셋의 지휘 아래 쳐들어온 외국 침공군들에게 자유를 위해 싸우기보다 굴복하게 될 것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모세는 이 침공 전 잇사갈 지파가 길보아와 다볼산 사이에 있는 비옥한 평야에서 번영하게 될 것을 내다보았다. 따라서 그들이 얻은 번창의 축복은 짐을 옮기기 싫어하는 게으른 나귀의 비유로 암시된 한가한 생활로 이끌리게 되었다고 하였다(창 49:14)⑻.
그러므로 야곱의 잇사갈에 대한 예언도 그대로 성취되었으며 신명기의 모세의 예언도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잇사갈의 풍요로움은 외적의 침공을 불러 들였고 그들과 싸우지 않으려면 굴복하든지 조공을 바쳐야 했을 것이다. 따라서 물질적인 번영은 어느 시대나 영적인 면에서나 육신적인 면에서 항상 위험성이 있었다.
주
1. Victor P. Hamilton, Genesis 18-50(Grand Rapids: Eerdmans, 1995), p.667
2. Gordon Wenham, Genesis 16-50(Waco: Word, 1994), p.480
3. Victor P. Hamilton, Ibid., p.668
4. Gordon Wenham, Ibid.,
5. Earl S. Kalland, Deuteronomy,E.B.C,Vol.3(Grand Rapids: Zondervan, 1992), p.228
6. Beacon Bible Commentary, Vol.1(Kansas: Beacon Hill, 1969),p.618
7. John F. Walvoord and Roy B. Zuck,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Old Testament(Victor Books,
1985), p.322
8.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