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노아의 방주가 사나운 홍수에서 보전될 수 있었는가?
revdavidsuh  2008-07-19 13:15:33 hit: 1,443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창 6:14)

노아의 방주는 항해할 수 있는 배가 아니라 하나의 큰 짐을 싣는 바지선과도 같았다. 그런데 홍수는 온 땅을 뒤덮었고 또 사십 주야
비가 쏟아졌으므로 폭풍까지 몰아쳤을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그런 사나운 홍수에서 방주가 부서지지 않고 안전할 수 있었는가?
  
노아가 만든 방주는 우리말 성경에는 잣나무라 했는데 잣나무는 비교적 단단한 나무다. 게다가 나무 자체에서 진액이 분비됨으로 부패를 막아 준다. 거기 더해 역청을 안팎에 칠했으므로 물이 안으로 들어 올 수 없었다. 이렇게 우선 방주의 재료였던 잣나무(영어로는 gophewood)는 매우 강하고 유연성이 있는 재료였으므로 부러지거나 쉽게 부서질 수 없었다. 역시 무거운 짐은 방주를 안전하게 하는데 유리했다. 더 나아가서 군함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방주처럼 긴 상자 모양이나 물에 뜨는 상자 차가 거친 물에서 아주 안전한 선박이라는 정보를 제공해 준다. 그리고 실제로 현대 항로는 노아의 방주와 유사한 기본 구조를 가지고 있다⑴. 실제로 규모는 작지만 홀랜드와 덴막에서 노아의 방주 형태를 따라 다양한 배를 만들었는데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화물을 싣기에 더 적합해서 다른 형태의 배보다 1/3의 짐을 더 실을 수가 있었고 일손이 더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물이 점차 불었다 빠지는 것을 오지에서 육개월 지속해 본 결과 방주와 같은 구조의 배가 안전했다⑵.
  
이런 사실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들이 있다. 그것은 노아의 방주가 지금도 부분적으로 잔존해 있어서 볼 수 있다는 다양한 정보들이다. 아르메니아의 골디안스(Gordyaeans)산에 방주의 어떤 부분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Josephus, Ant 1,3,6). 그 후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모슬렘의 문헌에 노아의 방주가 이륙한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들이 있는데 그 곳들 대부분에는 나무의 조각들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아라비아(Jubal Tudiin the Aja' Range), 터키의 남동에 있는 디그리스(Tigris) 상류(Gudi Dag/Jubal Judi in the Gordian Mountains) 카카수스 목장(Mt. Boris), 서부 터키(near the city of Apamca), 북쪽 이란(Alwand Kuh and Mount Domavand), 터키의 북동쪽(Masis/Agri Dag) 등이다.
  
최근에 탐사자들은 평지에서 16,900 휘트 높이로 치솟아 있는 장엄한 산(39° 42' N;44°18'E)을 아라랏산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 탐사자들은 그 나무 조각들이 5,000년 이전의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⑶.
  
물론 위와 같은 보고들이 정확한 사실로 다 신뢰할 수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가 만든 방주가 그만큼 견고했으리라는 사실에는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주
   1.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s Ask(Victor Books,1992), p.42
   2. George Frederick Wright, Ark of Noah, ISBE, Vol.1( Grand Rapids: Eerdmans, 1957), p.246
   3. Lloyd R. Bailey, Noah's Ark, The Anchor Bible Dictionary(New York: Doubleday, 1992), p.1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