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창 3:8)
성경은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고 가르친다. 영이신 하나님은 시공에 제한을 받지 않으시며 무소부재(Omnipresent)하시다(시 139:7-10; 렘 23:23).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담과 하와는 어떻게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었는가? 더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신다. 하나님의 눈은 어디서나 보신다(욥 24:23; 시 33:13-15; 139:13-16; 잠 15:3; 렘 16:17; 히 4:13).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며 모든 사람의 걸음을 지켜보신다(삼상 16:7; 왕상 16:15; 롬 8:27; 계 2:23). 하나님은 언제나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다 아신다. 하나님은 전지하시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감찰하심에서 자신이나 자신의 죄를 감출 수 없다(시 139:7-12; 94:1-11; 요 1:1-12).⑴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숨을 수는 없었다. 여기 창세기 3:8의 의미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두려워서 하나님 앞에서 숨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요나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도피하여 숨으려 했다는 말이지 그가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었다는 말은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를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아담을 모르시겠나? 그것은 헛된 망상이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그림자들이 가장 탁월한 방어물이라는 환상을 가진다.⑵ 그러나 시편 139:7대로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할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또 다른 해답이 가능하다. 그것은 여기 이 구절은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을 말씀하지 않고 하나님의 가견적인 나타나심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참고, 24절). 하나님은 그의 무소부재하심으로 어디에나 계시나 종종 그는 자신을 불타는 가시덤불(출 3장), 불기둥(출 13:21), 성전 안의 연기(사 6장) 등등에서처럼 어떤 일들을 통하여 어떤 장소에 자신을 나타내시었다. 따라서 이런 국한된 의미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이다.⑶ 어느 해석을 택하든지 해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본문이 뜻하는 것은 죄를 지은 아담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으려고 시도했다는 말이지 그것이 가능했다는 것은 아니다.
주 1. J.I. Packer, Concise Theology(Weaton: Tyndale House,1993), pp.31-32 2. John Calvin, Genesis, Vol.1(Grand Rapids: Baker, 1989), p.160 3.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p.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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