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7)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 먹으면 정녕 네가 죽으리라 하셨는데 뱀은 하와에게 네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모두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었으나 즉시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쫓겨 난 후에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창 3:8-19). 창세기 5:5에 보면 아담은 930년을 살았다. 그러면 누가 옳았는가? 하나님보다 사단이 옳지 않았는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신 것인가? 또 하나님은 예언하신 대로 이루실 능력이 없으셨는가?
우리는 창세기 2:17에서 세 가지 중요한 내용을 찾아 볼 수 있다. 1.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2. 네가 먹는 날(day) 이란 뜻, 3. 네가 정녕 죽으리라는 의미이다.
이상 세 가지의 뜻을 바로 이해하게 될 때 우리의 의문이나 오해는 풀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먼저 이 나무에 대해 생각해 보자. 여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무슨 마술적인 상징으로 생각할 수 없다. 그 나무가 신기한 어떤 화학 성분이 있어서 자동적으로 선과 악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넓힐 수 있는 촉매제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 대신에 이 나무는 신약에 성례나 성찬의 의식에서와 같은 기능으로 하나님이 지정해 주신 도구였을 것이다. 그 나무는 성찬의 떡이나 포도주같이 실제적 나무로 구체화된 하나의 참된 상징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생명나무가 역시 실제의 나무이면서도 그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개인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선물임을 상징하는 것과 같았다. 주의 성찬에 참예하는 자가 합당치 못한 방법으로 참예하는 것을 성경은 경고하고 있으며 그 경고를 무시한 사람들은 실제로 병이 들었으며 어떤 경우는 죽기까지 하였다(고전 11:30). 같은 방법으로 나무는 첫 조상을 테스트하기 위한 상징이었다. 이 나무는 첫 조상이 하나님을 순종하려는지를 시험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나무는 다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피조된 사람이 그에게 순종하기를 거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설명한다. 그 나무는 그 반역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쓰였다. 여기서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가 죽지 않은 것을 보면 그 나무의 실과에 독성이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⑴ 둘째, 그 날에라는 말은 선악과를 먹는 바로 그날로 죽을 것으로 저들이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날 그 순간에 그것이 완성되고 끝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열왕기상 2:37에 다윗은 시므이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정녕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실제로 그가 다윗의 명을 어긴 그날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다. 두 경우 모두 그날에 시작된 활동으로 예언된 결과(죽음)의 확실성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시작을 의미하지 완성을 말씀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⑵ 그러나 여기 네가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성급한 부모처럼 엄한 경고의 위협을 하셨다가 점차 그 노가 사라지면서 그 목적을 수정하고 변경했다는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⑶ 어떤 학자들은 아담과 하와가 죽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 대한 그의 죽음의 형벌을 시행치 않으셨고 차라리 그의 은혜에 대한 암시로 그 시행을 유보하셨다고 해석한다(D.J.A. Clines). 또 다른 학자들은 이 구절을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네가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인간이 될 것이라는 의미라고 해석한다(D. Jobling). 그러나 구약에서 네가 죽으리라는 말이 죽을 존재가 된다는 의미로 쓰인 구절이 없다. 이 구절에 대한 보다 바른 이해를 위해 하밀톤(V.P. Hamilton)은 두 가지 사실에 주의한다. 1. 구약에서 동사의 칼(Qal, you shall die) 형태와 호팔 (Hophal, yumat/tumat, you shall be put to death)형은 구분된다. 전자는 하나님께서 집행자가 되시며 그 의미는 그가 하나님의 손에 죽으리라는 것이다. 후자는 사람이 그 집행자로 사람에 의해 죽음(사형)에 처해 진다는 뜻이다. 그 예로 창세기 20:7에 하나님께서 아비멜렉 왕에게 하신 말씀은 여기 2:17과 같이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그러나 창세기 26:11에서 아비멜렉이 이삭과 리브가를 건드리는 자는 사형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따라서 여기 2:17에서는 사람에 의한 사형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켰다.
2. 네가 죽으리라는 말씀은(2:17; 3:4) 구약의 다른 곳에서 12번이나 나오고 있는데(창 20:7; 삼상 14:44; 22:16 왕상 2:37, 42; 왕하 1:4, 6, 16; 렘 26:8; 겔 3:18; 33:8, 14), 이 구절들은 모두 죄로 인한 심판이나 처벌의 결과로서 불시의 죽음을 가리켰다. 그 예로 예레미야 26:8에 제사장과 선지자와 백성들이 예레미야에게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으나 죽음의 형벌은 시행되지 않았다. 또 사무엘상 14:44에서 사울이 요나단에게 네가 정녕 죽으리라 하였으나 요나단은 죽지 않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네가 죽으리라는 말이 분명하게 담고 있는 의미는 하나님이나 왕명에 의한 사형 선고에 대한 고시였다.⑷ 따라서 이 구절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는 즉시로 그들이 죽는다는 말씀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죽음에 대한 정의에서 또 다른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성경에서 죽음은 세 가지 다른 형태로 소개된다.
1. 육신적인 죽음이다. 이것은 몸에서 영의 분리를 가리키는 죽음이다. 분리된 몸은 화학으로 분해가 되어 땅의 먼지로 변한다. 사람이 아닌 피조물의 영(네페스)은 즉시 그 존재가 그치게 되나(전 3:21) 사람의 영은 죽을 때에 곧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된다(눅 16:22; 빌 1:23). 이 경우에 아담이 즉시 육신적으로 죽지 않은 것은 바로 그날 죽음의 선고가 그에게 지워졌으나 하나님의 은혜가 그 선고의 시행을 연기시켰다고 볼 수 있다.
2. 영적인 죽음이 있다. 이 죽음은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고 떨어져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아담 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은 후 하나님 앞에서 숨었다. 하나님을 기뻐하며 교제했던 저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창 3:10). 따라서 저들이 범죄한 순간 영적인 죽음의 상태로 떨어진 것이다. 저들은 그의 언약에 대한 위반으로 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분리되고 말았다. 이 영적인 죽음의 의미에서 저들은 선악과를 따 먹은 날 말씀대로 죽었다. 그 이래로 사람은 불의한 상태로 떨어지게 되었으며 타락한 육체(육체적 본성)를 지녀 하나님에게서 소격되고 그 하나님과 원수의 상태로 있게 되었다(롬 8:5-8). 생명의 하나님에게서 떠나는 것이 곧 영적인 죽음이다.
3. 영원한 죽음이 있다. 하나님은 참 생명과 기쁨의 원천이시다. 영원한 죽음은 그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하게 분리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 죽음으로 사람은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과 형벌을 당하게 되는데(계 14:11) 이것이 사단과 짐승과(자기를 신화하는 세계의 독재자) 그의 종교적인 협력자, 거짓 선지자들의 마지막 상태다(계 20:10).역시 요한계시록 21:8에 회개치 않는 자와 용서하지 않는 자도 불못에 던지우리라 하였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계 20:14).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은 아담의 타락에 동참한 죄인이므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이 영원한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의 자리에 들어오게 된다 (요 3:16).⑸
따라서 네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은 그가 선악과를 먹는 순간에 죽는다는 말씀이기보다 사형의 선고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여기서 네가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그 죽음이 영적인 죽음을 가리켰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죽음이 마침내 육신적인 죽음도 가져 오고야 말았다. 그러나 육신적인 죽음을 들어 이 구절을 해석한다면 그날 이미 죽음이 시작되어 마침내 죽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 1. Gordon J. Wenham, Genesis 1-15(Waco: Word, 1987), p.67 2. Walter C. Kaiser, Jr.,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IVP, 1989), pp.20-22 3. H.C. Leupold, Exposition of Genesis, Vol.1(Grand Rapids: Baker, 1987), p.129. 여기서 류폴드는 Skinner의 이론이 잘못임을 지적해 주었다. 4. Victor P. Hamilton, Genesis 1-17(Grand Rapids: Eerdmans, 1990), pp.173-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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