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6-17)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만드신 안식처였다. 에덴은 과연 은혜의 동산이었다. 그 곳에 있는 그 나무들 까지도 은혜의 특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여기에 값싼 은혜는 없었으며 저자는 왜 나무들이 거기에 있었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⑴ 그것은 신비이지만 우리는 에덴동산 안에 있던 그 나무들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관대하심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을 수 있다고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문을 품게 만든 것은 뱀의 꼬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충분한 허용(어느 나무나)을 하시고 다만 하나만 금하셨으나 뱀이 하나님의 관대하신 허용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만을 크게 부각시켰던 것이다.⑵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시험하셨나? 이 문제는 몇 가지 해답이 가능하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아담에게 그런 시험을 하셨읍니까? 하고 반문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명령하신 것은 그의 사람에 대한 주권적 관계와 그에 대한 사람의 종속적인 관계를 분명히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가 창조주시요 사람은 그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실 권리가 있으시다.⑶ 둘째,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그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다는 것은 인간이 도덕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담은 도덕적 선택을 행사하도록 기회를 가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담을 올무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긍정적인 선물이었다. 말하자면 아담으로 하여금 그의 도덕적 능력을 행사하고 무엇이 선인지를 선택함으로써 하나님을 모방하도록 능력을 주시는 방법이었다. 영적인 테스트나 시험은 부정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우리로 범죄하게 하는 함정이 없다. 그것들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헌신을 증명하고 그에게 순종함으로서 우리의 인격을 강건하게 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그의 구속적인 역사를 나타내는 기회이다.⑷ 셋째, 하나님께서 아담이 실패할 것을 아시면서도 시험하신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주장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그 시험에 실패하도록 방관하셨을 경우에만 정당한 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담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 테스트에 실패하지 않도록 충분히 아담을 경고하셨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2:17). 그리고 그 동산에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사시었다. 하나님의 임재는 그가 마귀의 시험을 뿌리치기에 충분하였다. 이렇게 보면 아담은 시험을 충분히 이겨 승리했어야 한다. 더구나 아담은 죄가 없었다. 아담은 동산 모든 실과를 임의로 먹을 수 있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사셨다. 그러므로 그 시험에서 하나님이 비난받으실 이유를 찾거나 정당하지 못하셨다는 주장을 펴는 것은 결과만 보고 속단하는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아담이 선을 택함으로 더 성숙한 인격을 갖추기를 원하셨지 결코 죄에 빠져 타락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두시고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은 아담이 그 동산에서는 왕이었을지라도 그 위에 하나님이 게신 것을 깨닫고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주 1. Walter Brueggemann, Genesis(Atlanta: John Knox, 1982), p.45 2. Victor P. Hamilton, Genesis 1-17(Grand Rapids: Eerdmans,1990), p.172 3. Beacon Bible Commentary, Vol.1(Kansas City: Beacon, 1969),p.41 4. Larry Richards, Bible Difficulties Solved(Fleming H. Revell, 1993), pp.2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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