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7)

이 구절은 학개서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일 것이다.  문제는 만국의 보배란 말에 대한 해석의 어려움에 있다.  
이 구절의 초기 해석은 고대 랍비들로부터 시작이 되어 제롬(Jerome)을 통해 기독교인들에게 전래되었다.  고대와 중세 교회의 주석가들은 만국의 보화가 올 것이라는 벌가타역(the Vulgate)의 단수를 따라 학개의 예언의 성취로 누가복음 2:22-26에 기록된 사건들을 인용하므로서 이 구절을 메시아에 대한 말씀으로 해석하였다. 루터는 특별히 이 구절에 대한 기독론적인 해석을 강조하여 학개의 예언이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흠정역은 아직도 벌가타역을 따라 만국의 보화가 올 것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루터의 경우에는 보화란 말보다 모든 이방의 위로가(Consolation)올 것이라고 하였다.1)  
  
그리고 이렇게 해석하는 이유로서는 위에서 지적했듯이 보화란 말을 단수로 본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방 나라들은 메시아를 대망하지 않고 차라리 그들에게 평화를 가져 올 지배자를 대망했지만 메시아는 그들이 알았던 몰랐던 평화의 왕으로 오신 것이 사실이었다.  
  
이 경우에 성전은 적은 유대인 공동체에 의해 재건된 이 성전이며 후대에 헤롯에 의해 확장된 것인데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거기 들어 가셔서 예배하신 곳이라고 본다.2)
  
그러나 위의 이 번역의 문제점은 모든 민족의 보배란 말을 단수로 취급할 수 없다는데 있다.  왜냐하면 술어의 동사가 복수 동사이기 때문에 그 주어 역시 복수여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더구나 문맥으로 볼 때 그 다음에 나오는 구절이 은과 금을 언급하고 있으므로 보배로 해석하는 것이 메시아로 해석하는 것보다 합리적이라는 것이다.3)  그리고 이 경우에 보화란 말은 부를 기술하는 말이면서 값진 기명(그릇)들을 의미하는 구절로 자주 나타난다(호 13:15; 나 2:9; 대하 3:27; 36:10; 참고, 스 8:27).  따라서 학개는 금괴를 기대하지 않고 차라리 성전 예배에 필요했던 값진 기명들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 기명들은 주전 587년 멸망 때 빼앗겼으나(왕하 25:13-17) 마침내 다시 되돌아 왔다(스 1:5-11).4)
  
학개의 예언은 이사야 60:5-11과 같이 예루살렘으로 보화가 밀려들어 올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데 그 보화들은 나훔 2:9대로 노략물이나 선물일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 예로는 에스라 6:8-12(다리 우스로부터)과 에스라 7:12-26(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그리고 마카비 2서 3:3(셀레쿠스 4세로부터)이 있다.  또 다른 주석가들은 동방박사들의 선물(마 2:1-11)이 이 예언의 성취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위에서 밝혔듯이 보화로 보는 해석은 성전 재건 계획을 놓고 기근 등의 경제적인 난관에 부딪친 저들에게 하나님은 결코 모자람이 없으신 분이심을 기억케 함으로 용기를 주었어야 한다는 타당성이 있다.  따라서 여기 나오는 영광(카보드)은 하나님의 영광대신에 성전에 있게 될 풍성하고 값진 보화들로 본다.5)  이 해석은 근래에 학자들이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란 말씀에 영광이란 말은 메시아에 대한 인격적 언급이라는 해석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메시아의 구절에서 이사야 40:5과 60:1은 영광이란 말을 쓰고 있으며 역시 누가복음 2:31-32에 시므온도 예수님에 대해 같은 예언을 하고 있다.  이는 만인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그리고 9절에 이 전의 나중 영광은 이전 영광보다 다른 영광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대 헤롯이 확장시켜 지은 성전도 실제 건물이나 장식이 솔로몬의 성전보다 더 영광스러웠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이 성전이 더 영광스러운 것도 예수님이 그 성전에 들어가심으로 존귀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구약의 세기나 영광으로부터의 전혀 다른 신적임재였기 때문이다.
  
역시 9절에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는 말씀도 그리스도께서 평강의 왕(사 9:6)으로 오실 그의 사역과 섬김에 부합한다(마 12:6).6)
  
이 구절이 보배로 해석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메시아로 해석할 것인가는 학개가 모호한 낱말의 선택으로 인해서 쉽지 않은데 아마도 그는 비인격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모두 해석이 가능하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해석을 따르더라도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보면 차라리 근래 학자들의 해석 다시 말해서 문자적으로 보배로 해석하는 편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주
   1. Pieter A. Verhoef, the Books of Haggai and Malachi(Grand Rapids: Eerdmans, 1987), pp.103-104
   2. Larry Richards, Bible Difficulties Solved(Fleming H. Revell, 1993), p.216
   3. Ralph L. Smith, Micha-Malachi(Waco: Word, 1984), p.156
   4. David L. Petersen, Haggai and Zechariah 1-8(Philadelphia: Westminster, 1984), p.68
   5. Pieter A. Verhoef, Ibid.,
   6. Robert L. Alden, Haggai, E.B.C. Vol.7(Grand Rapids: Zondervan, 1985),  p.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