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태양과 달의 빛은 더해질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줄어들 것인가? |
RevSuh |
2008-08-02 15:29:21 hit: 1,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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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사 30:26) 위의 말씀과 대조적으로 이사야 24:23에서는 그 때에 햇빛과 달빛은 여호와의 빛에 부끄럽게 되리라고 하였다. 만일 두 사건이 동일한 때에 발생할 것이라면 두 본문은 서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위의 두 본문이 동일한 때 다시 말해서 장래의 메시아의 왕국에서 있을 사건이라는데 동의한다. 그렇다면 왜 정반대로 말씀하고 있는가? 먼저 이 본문의 뜻부터 알아보고 문제를 풀기로 한다. 위의 본문을 표준새번역 성경에서는 “달빛은 마치 햇빛처럼 밝아지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서 마치 일곱 날을 한데 모아 놓은 것같이 밝아질 것이라”고 번역하였다. 위의 말씀이 문자적이냐 상징적인 표현이냐에 따라 그 의미상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일반적인 뜻은 빛이 더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24:23에서는 태양과 달빛이 무색해 질 것을 말씀한다. 따라서 그러면 어떻게 동일한 사건에 별개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가? 위의 사건을 동일한 사건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박윤선 박사는 24:24의 말씀을 계시록 21장의 사건과 동일하게 보고 하나님의 영광에 해와 달의 빛도 무색하게 될 것을 가리켰다고 본다. 그러나 30:26의 사건은 장차 유대인에게서 일어나실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을 가리켰다고 보았다(1). 그러나 장차 있을 하나님의 나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렇다면 왜 같은 사건이 서로 다른가? 크게 보아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견해는 이 본문들의 태양과 달의 빛은 서로 조화되는 시적 예언이라고 한다. 따라서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의 빛이 저들의 빛을 무색하게 한다는 것이라고 본다. 영(Edward J. Young)박사도 새 예루살렘에 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을 비추기 때문에 달과 태양의 빛도 필요 없게 된다고 보았다(24:23). 물론 30:26은 그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처가 치료될 것을 예언한 말씀이나 태양 빛이 칠 배나 더 밝아지리란 말씀은 상징적인 표현으로 이 세상이 완전해 지며 하나님의 영광이 찬란하게 비췰 바 영원한 안식이 될 일에 대한 예언으로 보았다(계 21:23)(2). 오스왈트(John N. Oswalt)는 비유적으로 태양과 달은 근동에서 가장 중요한 신들이지만 하나님께서만 왕이시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왕직에 대한 강조의 반복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권능의 엄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렇게 보이는 찬란한 성체들에 비교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보았다(3). 델리히(F. Delitzsch)는 이 말씀(30:26)이 하늘과 땅이 그들의 안식의 옷을 입게 될 것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하늘과 땅이 세계의 주간에서 일곱째 날 즉 세계의 역사의 안식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의 주(Week)의 일곱 날의 빛은 일곱째 날에 모두 집중될 것이라고 하였다(4). 다음으로 이 본문들(24:23; 30:26)은 두개의 다른 장래에 대한 문자적 예언이라는 해석이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학자들은 하늘의 성체들의 자연적인 빛이 천년 동안 그리스도의 통치 기간에 더 밝아지게 될 것이라 한다(계 20:4-6). 그러나 그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계 21:1) 창조되며 거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것을 조명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비췰 태양이나 달이 필요 없게 된다는 것이다(5). 다시 말해서 1000년 왕국 후 대 백보좌 심판이 있고 그 후에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다스리신다는 것이다(계 21:2, 10). 따라서 그 성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찰 것이기 때문에 달과 태양의 빛이 필요없다고 한다(사 24:33; 참고, 계 21:2)(6). 그러나 보다 더 문맥에 따른 해석을 하는 학자들도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앗수루를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엄한 징계를 받은 것을 알았다(참고, 1:5-9). 이제 그의 능력들은 한번 진노로 그들을 치신 데서 치유하게 될 것이라 한다(참고, 사 40:2)(7). 장래에 있을 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어느 한 가지 해석을 따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럼에도 위의 구절들은 그 표현에서 문자적이기 보다는 비유적인 표현인바 왕으로서 하나님의 통치 때에 있을 사건에 대한 설명이라고 볼 수 있다.
주 1. 박윤선, 이사야(서울: 영음사 1971). p.303 2. Edward J. Young, the Book of Isaiah, Vol.2(Grand Rapids: Eerdmans,1992), pp.181-363, 3. Cf. John N. Oswalt, the Book of Isaiah 1-39(Grand Rapids: Eerdmans, 1986), p.561 4. F. Delitzsch, the Prophecies of Isaiah, Vol.2(Grand Rapids: Eerdmans,1980), p.39 5. Norman Ges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1992), p.269 6. John Walwood and Roy B. Zuck,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Old Testament(Victor Books,1985), p.1081 7. Geoffrey W. Grogan, Isaiah, E. B. C, Vol.6(Grand Rapids: Zondervan, 1986), p.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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