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6)
위의 말씀은 앞으로 오실 구세주 곧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예수그리스도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한데 있다. 우리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는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아들 되신 하나님이심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이 어떻게 아버지가 되실 수 있는가? 우리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고 할 때 그 하나님은 세 인격으로 계신 한 본질이시다. 즉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구별된 세 인격으로 계신 한 분 하나님이시란 뜻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본다면 이 구절은 문제가 된다. 그러면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류폴드(H.C. Leupold)는 영존하시는 아버지 대신에 아버지- 영원하신 으로 번역한다. 그 이유로서 이 구절은 그 인격의 영원한 존재의 사실보다 그의 영구한 아버지로서의 존재에 대한 사상에 강조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1). 글리슨 아처(Gleason L. Archer)는 여기 성육신하신 아들에 대한 강조에서 갑자기 성삼위 안에서 그의 부격 혹은 아버지로서의 신분을 단언하는 말이 나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고 영존하시는 아버지 대신에 영원의 아버지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2). 영(Edward J. Young)도 영존하시는 아버지보다 영원하신 아버지이신 분으로 보고 아버지란 말은 그의 백성에 대한 관심에서 메시아의 질을 지적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그는 그들에 대해서 아버지처럼 행동하신다. 예를 들어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우리의 구속자(사 63:16)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시 103:13). 따라서 여기서 부성직(fatherhood)이 영원이라는 말로 규정되었다. 그 메시아는 영원한 아버지시다. 그리고 이것이 옳다면 영원하신 그는 그의 백성에게 아버지시다. 이제와 영원히 그는 그의 백성을 지키시며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신다(3). 또 어떤 면에서 메시아는 이제 올 메시아의 왕국에서 왕이시다. 실제로 많은 왕들이 그들의 백성과 심지어는 포로된 자들에게까지도 아버지로 자처했다. 그러나 그들의 부성은 엄밀하게 일시적이요 자신의 부패로 얼룩진 특성을 가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 분의 부성은 영원한 것이다(4). 따라서 이 본문이 영원의 아버지를 강조한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란 말이다. 그는 그의 죽음, 장사지냄 그리고 부활로 생명과 불멸을 세상에 드러내시었다. 정말로 그는 그의 백성을 위한 영원의 아버지시다. 영원의 아버지로서 예수님은 사랑의 아버지가 그의 자녀들을 위해 준비하듯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영생을 주심으로 우리를 위해 예비 하신다(5). 그러므로 영존하시는 아버지로 성육신 하실 예수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은 삼위일체의 제2위로서 성자 하나님을 가리켜 한 말이 아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와 구세주 그리고 왕으로서 그의 백성된 성도들에게 아버지처럼 사랑하시고 돌보시며 예비해 주시는 분이시며 특별히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란 말씀이다.
주 1. H. C. L. Leupold, Exposition of Isaiah( Grand Rapids: Baker, 1988), p.186 2. 글리슨 아처, 성경 난제 백과사전(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0), p.366 3. Edward J. Young, The Book of Isaiah( Grand Rapids: Eerdmans, 1992), p.338-339 4. John N. Oswalt, Isaiah 1-39(Grand Rapids: Eerdmans, 1986), p.247 5.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26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