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7:14은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예언한 말씀인가? |
RevSuh |
2008-08-02 16:50:27 hit: 3,0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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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4) 여기 14절은 16절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지지하지 않는 것 같다. 더 나아가서 8:3이 그 예언의 성취로 보인다. 따라서 이사야 7:14-16의 전통적인 해석은 아래 세 가지 견해로 대별할 수 있다.
1) 이사야가 언급하고 있는 아들은 이사야가 이 메시지를 말한 후에 곧 임신되었다. 젊은 여인 처녀가 결혼하고 나서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선과 악을 구별할 나이가 되기 전에 북쪽 아람과 이스라엘의 동맹은 파괴되고 말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그 여인은 이사야가 예언할 때는 처녀였으나 그 아들이 태어났을 때는 그녀의 남편과 성적인 관계로 임신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아들은 이사야에게 낳은 아이라 한다(8:3-4). 그들은 8:1-4이 몇 가지 방식에서 7:14-17과 일치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배격되어야 하는데 ① 이사야의 아내는 이미 아들이 있었다(스알야숩 3절) 그리고 ② 둘째 아이는 이름이 임마누엘이 아니었다(8:3). 2) 두 번째 견해는 이 본문은 포괄적으로 메시야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가리키며 동정녀 탄생을 예언했다고 본다. 마태가 요셉과 마리아의 결혼은 예수님의 출생 후에까지 성사되지 않은 사실을 강조하였으므로(마 1:18,25) 예수의 탄생이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였다고 주장한다(마 1:21-23). 이 견해의 지지자들은 이사야의 이 예언은 단지 아하스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다윗의 가문에 대한 것임을 지적함으로써(사 7:13) 그 징조는 단지 그 왕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전 왕조와 민족에게 주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일 그 성취가 요셉과 마리아의 시대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예언이 아람과 이스라엘 연합군이 곧 파멸하게 될 것이라는 이사야의 요점과 연관지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주 예수님의 탄생이 버터와 꿀을 먹는 것과 연관이 있고(15절) 그 아이가 선악을 분별하기 전에 그 동맹이 깨질 것과 연관이 있겠는가? (16절) 이 견해의 지지자들의 대답은 시기가 유사하다고 한다. 즉 예수님의 유아기의 2년(그가 선악을 알 수 있기 전)은 아람과 이스라엘 조약이 2년 내에 사라진 같은 시간 구획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3) 앞의 두 견해의 종합으로 그 예언은 직접으로는 주로 그 동맹의 파괴에 관하여 아하스에게 한 것으로 본다. 그 알마(Almah)는 이사야가 그의 메시지를 말할 때는 처녀였으나 그 후에 그녀는 결혼해서 아기를 낳았다. 아람과 이스라엘의 동맹이 깨졌을 때 그 소년은 아직 어렸다. 수세기후에 성경에서 마태로 하여금 역시 동정녀 탄생의 진리였던 언급으로서 이사야 7:14을 인용하도록 인도하셨다(즉 아직 처녀였던 여인에-출생). 이 예언은 이사야에 의해 주어진 많은 예언들 중에 첫 번째 것이다(1). 그러므로 이 마지막 견해는 먼저는 이 예언이 아람과 이스라엘의 동맹이 깨질 것에 대한 징조로 주전 732에 디글랏빌레셀 3세(Tiglath-Pileser III)가 다메섹을 파괴했을 때 성취되었다. 그때 그 아들은(후에 올 임마누엘의 전형이 될) 아빠 엄마를 말할 수 있는 두 살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임마누엘의 전형으로 두 번째 올 아들에 관하여 살펴보자. 그 아들에 관해서는 8:8에 네 땅 임마누엘이여 하여 마헬살랄하스바스의 땅보다 훨씬 의미가 있으며 그 땅이 하나님의 구속의 핵심적인 역할을 보장받은 것은 실로 임마누엘 때문이다. 또 9:6에 이 아이는 그 어깨에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을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의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 한대로 약속된 전능의 구속자가 올 것이다. 7절은 메시아적 통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분명히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요 신인이신 왕 예수그리스도 - 그 자신이 영존하므로 그의 통치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 를 가리키고 있다(2). 임마누엘이란 이름이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름은 하나님이 아닌 어떤 인간에게 적용할 수 없다.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독생자로 그 자신이 우리의 육신을 입으셨고 우리의 본성을 취하심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연합시키셨다. 그리스도는 이 성육신에서 신인이 되시었다(3). 마지막으로 동정녀 탄생에 관해서 살펴보자. 여기 처녀가 잉태하여 라는 말씀에서 처녀는 정관사가 붙어 있다. 따라서 그녀는 어떤 잘 알려진 처녀일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특별히 처녀가 아들을 낳는다는 사상이 파다했었다(Gressmann). 그러나 구약에서는 메시아의 어머니에 대해 단 한번만 언급되고 있는데 미가서 5:3이다. 그런데 거기서는 그 정관사가 빠져 있다. 보다 일반적으로 본다면 정관사가 처녀(Almah)와 함께 쓰인 경우에 어떤 특별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가리켰다. 이사야의 목적은 어떤 다른 여인들에게서 그 처녀(Alman)를 구별하는 것이었다. 늙은 여인이나 결혼한 여인 또는 신부나 소녀도 아닌 한 알마(Alma)를 보았다. 그런데 알마(Almah)란 말은 결코 결혼한 여인에게 쓰인 일이 없다. 이 말이 쓰인 중에 적어도 한번은 분명히 이 말이 참 처녀를 가리켰다(창 24:43). 리브가는 알마로 불렸으나 실제로 그녀는 베투라(처녀)로 불러야 옳았다. 그것은 그녀가 남자를 몰랐기 때문이다. 다른 구절로는 잠언 30:19에 알마는 하나의 부도덕한 처녀를 가리켰으나 결혼한 처녀는 아니었다. 여기서 분명해진 것은 처녀란 말은 베투라란 말이었다. 이에 비해 알마는 자녀를 생산할 수 있는 젊은 여인이란 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왜 알마 대신 베투라를 쓰지 않았을까? 영(Edward J. Young)은 베트라란 말이 처녀를 가리키나 역시 약혼한 처녀를 가리켰을 것이라 한다. 또 요엘 1:8에서 베투라는 분명하게 결혼한 여인을 가리켰으며 후에 아람어로 된 주문 구절에서 베투라에 대한 아람 말은 결혼한 여인을 가리켰다. 따라서 만일 이사야가 베투라란 말을 썼다면 그는 우리에게 큰 혼란을 남겼을 것이다. 히브리말로 결혼하지 않은 여인을 가리키는 적합한 말은 알마 이상 없었다. 알마만이 어머니가 결혼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한다(4). 그러므로 이사야 7:14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나심으로 인간이 되시어 신 인(God-Man)으로서 우리의 구주가 되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주 1. John F. Walvoord and Roy B. Zuck,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Old Testament(Victor Books,1985), p,1048 2. 글리슨 아처: 성경 난제 백과사전, 황영철역(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0), pp.264-265 3. Cf, John Calvin, Book of the Prophet Isaiah, Vol.1(Grand Rapids: Baker, 1989), pp.248-249 4. Edward J. Young, the Book of Isaiah, Vol.1(Grand Rapids: Eerdman, 1992), pp.286-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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