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는 한 권인가 두 권인가? 이사야서는 모두 주전 8세기 한 사람 이사야에 의해 쓰여졌는가?
RevSuh  2008-08-02 16:54:52 hit: 3,358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사 1:1)
                                    
이사야서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는 주전 739년과 681년 사이 어느 때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래에 비판적인 학자들에 의하면 이사야서는 적어도 두개의 별개의 책으로 되어 있다고 본다.  제1 이사야는 1장에서 39장까지이며 제2 이사야는 46장에서 6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 제3이사야서를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렇게 보는 학자들은 이사야서가 한 권이 아니라 여러 책들을 함께 모은 것으로 이사야 선지자 한 사람이 저자 일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별히 이사야서 40-66장은 이사야 자신이 기록했을 리가 없다고 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 증거로서 언어학적인 내용(다른 문법과 문체), 신학적인 차이(하나님에 대한 다른 개념 등) 그리고 역사적인 논증을 든다.  이런 학자들 중에 언어나 신학적인 논증은 그들의 논점을 참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데 동의하는 이들도 있다.  따라서 역사적인 논증이 가장 강한데 그 내용을 보면 40-66장은 이미 현재로서 포로된 상태를 가정하고 있지만 이사야는 그 포로 되어 가기 오래 전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40-66장을 이사야가 기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1).
  
그러나 전통적인 견해를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들이 있다.
첫째, 비판적인 학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예언이 불가능하며 예언자들이 먼 장래를 내다 볼 수 없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40-55장에 고레스에 대한 예언은 고레스가 페르시아를 다스린 후에 기록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의 시작에서 끝까지를 다 아시는 분(사 46:10)이 아니신가?  따라서 비판적인 학자들은 선지자 이사야가 계시를 통해 오랜 후에 있을 일을 내다보고 예언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둘째, 이사야서의 이등분한 사이에 차이는 두 저자라는 접근보다 다른 방법으로 설명될 수 있다.  1장에서 39장은 독자로 하여금 40장에서 66장 사이에 포함된 예언들을 위해 예비하게 해 준다.  이 예비적인 장들이 없이는 이사야서의 마지막 부분은 거의 의미가 없게 된다.  1장에서 35장은 하나님의 백성을 파멸시키려는 수리아의 위협을 경고한다. 36-39장에서부터는 앞선 부분에서부터 온 변화에서 산헤립(36-37)의 침입을 내다보고 또 예루살렘(38-39장) 멸망의 원인이 된 영적 몰락을 뒤돌아봄으로서 40-66장으로 나아간다.  36-39장은 연대기적 순서가 아니다.
  
그것은 저자가 그것들을 독자로 하여금 무엇이 뒤따라 일어나는지를 준비시키는데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이사야서의 두 부분 사이에 단어나 문체에서의 차이가 비판적인 학자들로 두 책이 서로 다르다는 입증에 이용되어 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주장해 오는 만큼 주제나 강조에서 차이점으로서 설명될 수 있기에는 그리 큰 것이 못된다.  어떤 저자도 다른 주제에 대해 글을 쓸 때 같은 단어나 문체를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두 부분에서 책의 통일성을 증명할 내용이   다 함께 나온다.  예컨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1-39장에서 12회 나오며 40-66장에서는 14회 나온다.

아래의 구절들이 두 부분 사이에 유사한 실례들이다.
       1 - 39장               40 - 66장
         1:15                      59:3
         28:5                     62:3
         36:5                     41:18(2)

 넷째, 신약의 저자들은 이사야 1이나 이사야 2가 하나이며 동일한 저자임을 분명히 하였다. 많은 신약의 인용들은 이사야서가 단지 그것의 전통적인 명칭에 따라서만이 아니라 분명히 그 역사적 이사야 자신의 개성을 언급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마태복음 12:17-18은 이사야 42:1을 인용하면서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태복음 3:3은 이사야 40:3을 인용하는데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다. 누가복음 3:4은 이사야 40:3-5을 인용하면서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라고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 8:28은 에디오피아 내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부분은 특별히 이사야 53:7-8이었다.  로마서 10:16은 이사야 53:1을 언급하는데 이사야가 말하되 하였고 로마서 10:20은 이사야 65장 1절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사야가 담대히 말하되 하였다.
  
신약의 가장 결정적인 인용은 요한복음 12:38-41인데 38절은 이사야 53:1을 40절은 이사야 6:9-10을 인용하였다.  그런데 영감받은 사도가 41절에서 언급하기를 이사야는 그가 그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니까 이사야 6장의 성전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본 이사야는 53:1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사야와 같은 인물이다.  만일에 6장과 53장의 저자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영감된 사도 자신이 잘못되었을 것이 틀림이 없다(3).
  
다섯째, 사해사본(The Dead Sea Scrolls)은 이사야서의 완전한 사본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두루마리에서 39장과 40장 사이에는 갭이 없다.  이것은 쿰란 공동체(Qumran Community)가 주전 제2세기에 이사야의 예언을 한 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히브리 어 성경의 주전 제2세기 헬라어 번역본은 이사야서를 단일 저자 선지자 이사야에 의한 단 권의 책으로 취급하고 있다(4).

따라서 비판적인 학자들의 두 책 이사야서에 대한 전체에 대한 충분한 주의 없이 분리된 부분에 대한 분석은 역사적 비판적 해석의 적합한 관례가 아니다(5).
  
그러므로 우리는 포로 시대에 무명의 저자가 글을 쓸 때에 비록 그가 이것이 그 경우가 아닌 것을 충분히 잘 알면서도 마치 예루살렘과 성전이 아직 거기 있었을 것으로 40-66장을 작성했다는 설과 이사야 자신이 이 장들을 썼으며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사건들이 반드시 이룰 것을 확신함으로 그 확실성을 가르치기 위해서 현재 시제를 사용했다는 설 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6).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후자를 택하지 않겠는가?
영(Edward J. Young)은 이사야 1장1절이 단지 첫 장의 표제가 아니라 이사야의 예언들의 전체적인 수집에 대한 표제라고 하였다.  그리고 네 왕의 결합된 통치가 이사야의 사역의 전 기간과 동시에 일어난 것이 이 해석을 지지한다고 하였다(참고, 미 1:1; 호 1:1)(7).
  
그러므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예지로 당신의 종 선지자들에게 미리 일어날 일들을 계시해 주시므로 예언적인 글을 쓸 수 있도록 하신 사실을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사야서의 이사야 저작과 그 책의 통일성에 결코 문제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주
     1. William Hendriksen, Survey of the Bible(Grand Rapids: Baker, 1978), p.242
     2. Norman Jeisler,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p.265-266
     3. Gleason L. Archer, Jr. A Survey of Old Testament(Chicago, Moody, 1974), pp.348-349
     4. Norman Geisler, Thomas Howe, Ibid.,
     5. John N. Oswald, The Book of Isaiah(Grand Rapids: Eerdmans, 1986), pp.45-46
     6. William Hendriksen, Op.cit., p.243
     7. Edward J. Young, the Books of Isaiah(Grand Rapids: Eerdmans, 1992), p.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