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렘 2:13)
이 본문은 이스라엘의 죄와 그 결과에 대한 설명을 비유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져 바알을 섬기게 되었다. 본문은 저들의 두 가지 죄를 지적하고 있다. 첫째로, 저들은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렸다. 둘째로, 저들은 물을 담을 수 없는 웅덩이를 팠다. 따라서 여기서 가르치려는 진리는 이방의 신 우상은 죽은 신이므로 물을 담을 수 없는 터진 웅덩이처럼 생명을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1). 그러면 생수는 무엇인가? 생수는 흐르는 물을 가리킨다. 여기서 흐르는 물의 원천은 샘과 같으며 땅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물을 가리킨다. 이런 샘은 사람만 아니라 짐승에게도 물을 공급해 줄 뿐 아니라 땅을 적셔서 곡식을 자라게 해 준다. 팔레스틴은 워낙 물이 귀한 곳이었기 때문에 가을이나 봄같이 비가 오는 철에 웅덩이를 여러 개 파서 거기 물을 비축해 둔다. 그런데 만일 그 웅덩이가 터져서 물이 다 땅속으로 스며들어가 버린다면 땅은 메마르게 되고 식수까지 어려워져 생존이 어렵게 된다. 예레미야는 여기서 유다의 죄가 진리를 배척하고 오류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지적한다. 저들은 참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김으로 축복을 저주로, 생명을 죽음으로 바꾸고 만 셈이다. 그러면 여기서 생수와 웅덩이는 무엇을 비유하고 있는가? 여기 샘은 하나님이시며 그가 생수의 원천이시다. 생수의 상징은 예수님께서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속에서 솟아나는 생수의 지속적인 원천으로 약속하신 성령을 가리켰다( 요 7:38)(2).
그런데 그 생수는 또 생명의 원천으로 (참고, 시 36:9) 하나님, 구원 그리고 그리스도를 비유하였 다(참고, 사 12:3; 55:1; 요 4:10-14; 7:37-39). 이 생수에 비해 우상 숭배는 터진 웅덩이로 비유하고 있다. 그것은 스스로 판 웅덩이요 스스로 만든 종교로 참 종교를 모방하나 죄인에게 구원을 주지 못한다(3). 죽은 신이 어찌 생명을 줄 수 있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참 하나님을 섬기는 신자도 우상 숭배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신자에게도 하나님 대신 다른 무엇을 더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며 섬길 수 있다. 오늘 축복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떠나 내가 만든 웅덩이로 만족을 추구하는 신자가 얼마나 많은가? 오늘의 터진 웅덩이는 부와 권세, 명성이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4) 그러나 사람의 가장 큰 궁핍을 채울 수 있는 방편은 지상의 것으로가 아니라 하늘의 것이어야 한다(5). 이스라엘은 어리석게도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포기하고 인간의 행위로 성취한 것을 택하고 말았다(6). 그것이 선민의 죄요 불행이었다.
주 1. C.F. Keil, Jeremiah, Lamentations(Grand Rapids: 1980), p.57 2. Larry Richards, Bible Difficulties Solved(Grand Rapids; Baker, 1993), p.174 3. 박윤선, 예레미야(서울: 영음사, 1970), p.37 4. F. B. Huey, Jr. Jeremiah, Lamentation(Nashville: Broadman, 1993), p.64 5. Jamieson, Fausset & Brown, the Whole Bible Commentary(Grand Rapids: Zondervan, 1961), p.598 6. R. K. Harrison, Jeremiah & Lamentation(Downers Grove: IVP, 1973), p.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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