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죄는 근절될 수 있는 것이었는가 그렇지 않은 것이었는가?
RevSuh  2008-08-02 22:15:57 hit: 1,393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찌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  (렘 2:22)
                              
위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쫓아 섬긴 죄가 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인한데 대한 하나님의 질책이요 경고이다. 저들은 골짜기에 마다 우상 숭배의 흔적을 남겨 두고 있었다.  그들은 발빠른 암약대와 성욕이 발동한 암나귀가 수나귀를 찾아 헤매듯이 바알을 찾아 섬기고 힌놈의 골짜기에서는 그들의 자녀를 불태워 희생시키기까지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죄가 없다고 부인한 저들은 정말 교정이 불가능한 백성이었다.
  
따라서 저들의 죄는 잿물(미네랄 알카리)이나 비누(식물성 알카리)로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외적인 청결은 그 백성의 내적 더러움을 가릴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많은 외적인 개혁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는 없었다.  죄는 표면처럼 그렇게 얕거나 피상적인 것이 아니다(1).

따라서 아무리 많은 제물을 성전에 가져 왔더라도 유다의 죄는 옮겨질 수 없었다(7:9-10; 참고, 암 4:4-5; 사 1:12-15)(2).
  
그런데 문제는 4:14에서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한데 있다.
  
예레미야 4:14 말씀은 원수가 급속하게 저들을 공격해 올 것에 대한 예언이요 대책이다.  그들은 북쪽에서 이스라엘의 최북단의 땅인 단을 먼저 통과할 것이며 그 후에 에브라임의 산들을 통해서 올 것인데 그곳은 예루살렘에서 10마일 북쪽에 위치해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예루살렘을 구하려면 신속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느 것이 옳은가?  위의 두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들은 어떻게 조화가 가능한가?
  
예레미야 2:22은 외적인 청결에 대해 그것이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외적인 의식도 죄 많은 마음을 정결케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레미야 4:4에서나 신명기 10:16에서는 육신만 아니라 마음의 할례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3).
  
이 구절에 비해 예레미야 4:14은 마음의 청결을 말씀하고 있다.
용서받을 수 없거나 고침받을 수 없는 죄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회개는 죄의 용서를 가져온다. 진정한 회개는 죄를 슬퍼하며 회개할 뿐 아니라 그 길에서 돌아서는 삶의 변화를 포함하기 때문에 고침받을 수 없거나 근절할 수 없는 죄악은 없다. 다만 죄를 부인하거나 형식적인 회개만을 고집할 때 그것은 성령님을 거역하는 것이 되며 이런 죄는 사함받지 못하며 그런 형식적인 회개 자는 결코 그들의 행실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주
     1. Charles L. Feinberg, Jeremiah, E. B. C. Vol.6(Grand Rapids: Zondervan, 1986), p.393
     2. F.B. Huey, Jr. Jeremiah(Nashville: Brodman, 1993), p.66
     3.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