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하리라" (욥기 13:15)
이 본문은 사본 선택에서나 번역에서 모두 문제가 있는 구절이다. 따라서 자연히 다양한 번역과 해석을 하게 되었다. 표준 새번역에서는 하나님이 나를 죽이려고 하여도 나로서는 잃을 것이 없다. 그러나 내 사정만은 그분께 아뢰겠다 하였다. 그러나 영어 새흠정역에서 그가 나를 죽이실 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하리라 그럴지라도 나는 내 사정을 그 앞에서 변호하리라고 번역하였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흠정역의 번역에 익숙해 있다. 또 이 번역은 구약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어서 이 본문에 근거한 설교도 꾀 많이 들어왔다. 이 말씀은 이교 철학자들의 음산한 묵종과 대조적으로 믿음에 대한 히브리 정신의 핵심으로 찬양되어 오고 있다(1). 이와 비슷한 신앙 표현이 시편73:25-26에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말 성경(개역, 표준새번역)은 모두 부정적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정반대의 번역이 가능한가? 이 구절의 문제는“로”란 말로 히브리말을 아니다로 읽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에게로 읽는데 있다. 예를 들어 자음이 들어 있는 본문(Kethiv)는 ( (로)`아니다'로 되어 있으나 마소라식 모음 부호(Qere)에는 ( (로)) 즉 그에게로 되어 있다. 따라서 나는 소망이 없으리라 혹은 나는 그를 소망하리라? 가 된다. 골디스(Gordis)는 두 번역들이 제2세기나 그 이전의 미쉬나(Mishna)의 구절에서는 모두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어느 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의미가 된다.
1. 만일 우리가 마소라식 발음 부호(Qere)를 용납한다면 (Dhorme, Horst, Anderson, Fohrer, AV, RV, NAB, NIV) 욥은 소망이 있거나 하나님을 기다 릴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2. 그러나 만일 우리가 자음의 본문(Kethiv)을 따른다면 욥은 소망이 없고 기다리지 않으리라는 뜻이 된다. 이 경우에는 보라 그가 나를 죽이리니 나는 소망이 없다. 그러나 내가 나의 형편을 그 앞에서 변호하리라는 뜻이 된다.
이 두 번째 것이 의미상으로는 무리가 더 없다고 하겠다. 그것은 앞에 것은 전반절에는 무리가 없으나 후반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사정을 그 앞에서 옹호하리라고 할 때 사실상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의미가 없는 것이 되고 만다(2). 후자의 입장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전자의 번역은 사람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는 특성을 반대하는 번역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 전통적 번역은 불합리한 신뢰를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3). 다음으로 번역상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신뢰한다(AV), 기다린다(RV) 혹은 떤다(Graetz, Rowley, Dhorme)고 번역할 수 있는 동사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그 결정은 주변 문맥의 논법에 대한 독자의 인상이나 느낌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로우리(Rowley)는 신뢰가 아니라 도전에 대해 말하고 있는 문맥 때문에 부적절한 것으로 흠정역을 배격한다(4). 그러면 어느 편을 택하는 것이 옳은가? 어느 편을 택하든지 하반절 즉 하나님 앞에서 그의 행위(사정)을 변호하겠다는 욥의 소망에는 차이가 없다. 그리고 이 후반 절에 근거해서 전반절을 이해한다면 소망이 없다는 부정적인 번역보다는 긍정적으로 소망하리라 혹은 신뢰하리라는 번역은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루터는 내가 죽임을 당할 때까지도 나는 기다리겠다로 보았고 데리취(Delitzsch)도 그가 무엇을 하시든 죽음으로 나를 치실 지라도 나는 기다리겠다로 해석하였다(5). 이제 마지막으로 본문의 뜻을 정리해 보자. 위에서 보았듯이 본문은 긍정적인 해석이나 부정적인 해석이나 모두 가능하다고 하겠다. 물론 근래의 학자들은 부정적인 번역을 선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흠정역의 번역이 번역상으로나 해석상으로 문제가 없다고 본다. 돎(Dhorme)은 개역표준역(RSV)의 비관론과 부적성을 조사하였다. 따라서 욥의 신뢰가 소망이나 신뢰 혹은 기다림으로 표현되었든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6). 욥이 그가 나를 죽이실 지라도 란 표현으로 의미하려는 것이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비유적으로 내게 무엇이 발생하던 나는 아직도 내가 변화될 것이라는 확신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무죄함을 알며 또 내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기 때문이다(7). 그러므로 우리는 흠정역이 반드시 보존되어야 한다고 결론한다(8).
주 1. Morvin H. Pope, Job(Garden City: Doubleday, 1986), p.99 2. David J.A. Clines, Job 1-20(Texas: Word, 1989), p.312 3. John E. Hartley, the Book of Job(Grand Rapids: Eerdmans, 1988), p.223 4. Francis I. Anderson, Job(Downers Grove: IVP, 1976), p.166 5. John Peter Lange, Job(Grand Rapids: Zondervan), p.407 6. Francis I. Anderson, Ibid., 7. Walter C. Kaiser, Jr,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IVP, 1988), p.140 8. Francis I. Andersen, Op.cit., p.1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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