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은 환생을 믿었는가?
RevSuh  2008-08-01 12:13:28 hit: 1,659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니이다 하고"    (욥 1:20-21)


성경은 결코 불교나 힌두교처럼 환생을 가리키지 않는다.  사람이 한 번 죽으면 다시 세상에 태어 날수가 없다.  사람은 이 세상을 반복해서 살수는 없다. 그 결정적인 증거로 히브리 9:27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으리라' 하였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 욥은 그가 죽을 때 그가 나왔던 곳 다시 말해서 모태(어머니의 자궁)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성경의 다른 구절과 모순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욥은 여기서 결코 환생을 주장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그 참 뜻은 무엇이었는가?
  
먼저 이 본문의 해석부터 하기로 하자.
여기서 욥은 그의 손실(재산, 종, 자녀, 건강 등)을 그의 출생과 그의 죽음 사이에 공통점으로 이해하였다. 그가 출생 때 벌거벗고 나왔으니 이제 죽음에서도 벌거벗고 가게 될 것이다. 그와도 유사하게 이제 그는 비유적으로 그가 벌거벗었다는 말을 그가 떠난다는 뜻으로 썼다. 그 말의 문자적인 뜻은 거기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거기는 비유적으로 그의 어머니의 태였다(1). 그러나 그것은 니고데모가 거듭남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어떻게 내가 다시 어머니의 배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으리이까 하고 주님께 반문하였듯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여기서 어머니의 배(자궁)는 무엇을 가리켰는가?  욥은 분명히 어머니의 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서 돌아갈 것을 기대하였다(3:4). 따라서 어머니의 배는 문자적으로 어머니의 배를 의미했을 리가 없다.  일반적으로 어머니의 배는 두 가지 의미로 본다.

  1. 지구(땅)의 자궁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인간의 몸은 땅의 깊은 것으로 형성되었음을 말씀할 뿐 아니라(시 139:15) 지혜서(Ecclus 40:1)에서는 모든
     산자의 어머니로서 무덤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류의 기원을 일반적으로 땅의 먼지라고 하였다(창 2:9; 18:27; 욥 4:19; 시 103:14; 고전  
     15:47-49). 드라이버(G.R. Driver)는 아람 어로 움무(Ummu) 어머니는 역시 거주, 주민, 무덤을 가리킨다고 하고(2), 포프(M. H. Pope)도 죽음은 어
     머니 땅의 자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해석을 지지하였다(3).  이에 대해 앤더슨(F.I. Anderson)은 인간의 원천으로서 어머니의 땅이란 말은 성경
     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고 반대하였다. 그는 그 뜻이 일반적으로 전도서 5:15이나 디모데전서 6:7의 것과 같은 것으로 보고 그의 어머니로부터 온         인간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보았다(4).
  2. 본문에서 그리고 돌아간다는 거기는 지하 세계에 대한 완곡어법(Euphemism)이다. 따라서 거기(그리로)는 지하 세계를 가리킨다는 것이다(욥              3:17,19). 이런 의미로 쓰인 예는 애굽 사람들의 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G.R. Driver).  이 해석이 무리가 없다고 본다.  누구나 죽으면 죽은 자의         가는 곳 땅, 지하 세계 스올로 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스미크(Elmer B. Smick)는 구약의 용어에서 몸은 어머니의 땅으로 형성되었으며 그 배(자궁)         는 스올의 어두운 곳으로 생각하였다(5).

이제 이 본문이 환생을 지지하는지에 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해답이 제시된 셈이다.  이 본문에서 그리고 돌아간다는 것은 땅이요, 먼지요, 죽은 자가 가는 지하 세계였다.  그렇다면 거기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 산다는 환생의 어떤 사상도 없다.
  
그리고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여기 욥의 말은 시적이요 비유적인 표현이었다. 누구도 죽은 후에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욥은 다른 죽을 몸으로 환생하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는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 19:25-26)고 하였다.  그는 이 부패할 육신이 부패하지 않을 몸을 입게 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참고, 고전 15:42-44).
  
우리가 주지하는 대로 환생은 죽지 않을 육신적인 몸으로 살아날 것을 믿지 않는다.  환생의 이론은 영혼이 여러 번 다시 죽을 몸으로 살아 날 것이라고 한다(6).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결론할 수 있다.
욥은 여기서 사람이 한번 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진리를 말씀하고 있을 뿐 결코 환생을 주장하고 있지 않다.  특별히 욥은 그의 모든 손실과 손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이름은 찬양을 받으실 지라는 굳건한 신앙을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까지도 없던 것을 주셨으므로 그의 모든 것을 다시 가져가실 권리가 있으시다 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적신으로 왔으니 적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였다.  그는 소유할 권리를 갖고 태어나지 않은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7).

   주
   1.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Old Testament(Victor Books, 1985), p.720
   2. David J.A. Clines, Job 1-20(Waco: Word, 1985), p.37
   3. Marvin H. Pope, Job(Garden City: Doubleday, 1986), p.16
   4. Francis I, Anderson, Job(Leicester: IVP, 1976), p.88
   5. Elmer B. Smick, Job, E. B. C. Vol.4(Grand Rapids: Zondervan, 1988), p.883
   6. Norman Geisler &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226
   7. John E. Hartley, the Book of Job(Grand Rapids: Eerdmans, 1988), p.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