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은 실제 인물이었는가 아니면 가공인물이었는가?
RevSuh  2008-08-01 12:33:48 hit: 6,584

욥기는 일반적으로 그 문학 형식이 시로 되어 있고 그의 고난과 회복에서 초자연적인 세력이 크게 강조되어 있다. 더구나 욥은 성경을 제외하고는 셈 족 이름으로 소수의 자료에서만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며 여호와와 그의 선민간의 언약의 역사에 대한 지식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욥의 고난은 실제이기보다 바벨론 포로에서 당한 유대인들의 고통에 대한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따라서 욥은 실제 인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가공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욥은 과연 실제 인물이었는가?
우리는 그렇다고 믿으며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첫째로, 욥기는 실제로 발생한 사건에 대한 단순한 기록임을 부인할 수 없다.  욥기 1:1에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한 사람이 있었다는 표현은 다른 역사서 예컨대 사무엘상 1:1에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여로보함의 아들이요 한 것과 같다. 또 신약에 와서 누가복음 1:5에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사무엘서나 누가복음의 역사성을 믿을 수 있을진대 욥기의 역사성도 믿어야 한다(1).
  
둘째로, 욥이란 이름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으며 욥이 살았던 땅 우스도 어디였는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욥이란 이름은 어쩌면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또는 아버지가 없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혹시 욥은 고아가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도 한다(2).  더 나아가 욥은 히브리 인도 아니었다.  그러나 욥의 이름이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나오고 있으며 성경 이외의 문헌에서도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의 실재성을 확립시켜 준다.  에스겔 14:14에 욥은 노아와 다니엘과 함께 나온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즉 이스라엘)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자신이 노아와 다니엘의 실재성과 같은 수준에서 욥의 사실적 실재성을 단정하신 것을 발견한다(3).
따라서 욥의 실재를 부인한다면 노아와 다니엘의 실재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비성경적인 자료로서 주전 1900년대의 애굽 엑세크레이션 텍스트에(Egyptian Execration Tests) 팔레스틴의 족장 이름으로 AY(Y) abum이 언급되었으며(W. F. Albright), 주전 1850년과 1750년 사이에 다메섹의 군주의 이름으로 나타난다.
주전 18세기에 알라카(Ala'aka)와 17세기 마리(Mari)에서는 Ayyabum이란 이름이 나오며(D.J. Wisemann) 14세기 아말나(Amarna) 서신에서는 바산(Bashan)에 있는 아쉬다롯의 왕자가 Ayyab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Albright).  또 13세기 우가릿(Ugarit)에서는 관료의 명단에 Ayab이 나오고 있다(4).
  
셋째로, 욥기의 처음 두 장 속에 기록된 야웨와 사탄의 만남을 근거로 제기하는 역사성에 대한 공격은 예수님께서 사탄에 의하여 시험받은 사건에 관한 공격과 마찬가지로 그 근거가 정당하지 못하다(5).  성경은 사탄의 시험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고 있다. 따라서 사탄의 실제성을 믿고 그 사탄까지도 하나님께서 제어하신다면 사탄이 욥을 시험할 때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사실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넷째로, 욥기는 히브리 어의 성격보다는 아람어의 성격을 더 뚜렷하게 갖는 용어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는 언어학적 반론은 매우 빈약한 반론이다. 아람어가 북 아라비아에서 오랫동안 알려져 있었고 이 이야기의 배경이 북 아라비아의 어느 곳에 위치한 우스이였으므로 이렇게 아라비아 어와 아람어가 뒤섞여 나타나는 현상은 예상할 수 있는 그대로다(6). 우스란 곳은 예레미야애가 4:21에서 에돔과 유사하며 에돔 근처였다는 사실은 에돔 족의 혈통에 우스란 개인 이름이 나오며 욥기 안에 있는 개인적 이름의 대부분이 에돔 족에서 왔을 것이라는 가능성으로 지지 받는다. 더욱이 우스란 개인적 이름이 창세기 22:21에 나오는 부스(Buz)란 이름과 연관이 있는데 예레미야 25:25에서는 북서 아라비아에 있는 도시 드단(Dedan)과 데마(Tema)와 연관된 이름의 장소로 나온다. 그러므로 우스란 곳은 에돔에서 남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을 것이다.
또 70인 역의 욥기에 대한 부록에서 욥기가 보유한 전통에 욥의 땅은 이두메아(Idumea)와 아라비아  (Arabia)의 변방에 위치해 있었다(7).
  
다섯째로, 욥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과 히브리 민족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점등을 들어 욥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못된다. 그것은 욥이 민족으로서 히브리인들이 융합되기 전 시대 요단 동편에 살았던 족장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브라함과 동시대 인물이었다.
그 증거로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제시할 수 있다.

  1. 욥이 140세를 산 것은 족장들의 수명에 일치한다.
  2. 욥의 부가 생축으로 언급되었는데(1:3; 42:12) 그것은 아브라함과 야곱에게서도 사실이었다(창 12:16; 30:40; 32:5).
  3. 스바 인이나 갈대아 인은 아브라함 시대 유목민이었으나 후대에는 유목민이 아니었다.
  4. 42:11에 은 조각(금한 조각 한글개역)은 다른 곳에서는 창 33:19과 수 24:32뿐인데 두 경우 모두 야곱에 대한 언급이었다.
  5. 욥의 딸들이 그들의 형제들을 따라 그의 재산 상속을 한 것은 모세 율법 아래서는 불가능했다.
  6. 욥기의 문학적 작품 내용이 족장 시대의 애굽과 메소포타미아 주변에서 기록된 것과 유사하다.
  7. 욥기는 모세의 제도에 대한 언급이 없다.
  8. 몇 사람의 이름과 장소가 족장 시대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 등이다.
  9. 샤다이(Sadday)이란 이름이 욥기에서 31회나 하나님에 대해 사용되었는데(구약의 다른 곳에서는 17회만 나온 것과 비교해 보라) 족장들의 쓴 것        과 유사한 이름이었다(창 17:1; 참고, 출 6:3)(8).

마지막으로 욥의 실재성은 욥기의 장소와 이름들의 상세함이 풍유나 비유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탕자의 비유에서는 아버지의 이름도 아들의 이름도 그 장소의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나라를 받기 위해 나간 귀족이나, 불의한 청지기, 그리고 열 처녀, 등등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욥기에서는 욥의 친구들의 이름만 아니라 그들의 사는 곳까지 언급되어 있다. 엘리밧은 데만 사람이며, 빌닷은 수아 사람이고 소발은 나아마 사람이었고 엘리후는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욥 32:2)이었다(9).
  
이상에서 본대로 욥의 실재성이나 욥기의 역사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욥이 역사적으로 실재 인물이었기 때문에 성경은 욥의 실례를 들어 환난에 빠진 성도에게 인내로 견딜 것을 권면하고 있지 않는가?(약 5:11)

     주
     1. 글리슨 아쳐, 성경 난제 백과사전, 황영철역(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0), p.319
     2. Elmer B. Smick, Job, E. B. C. Vol.4(Grand Rapids: Zondervan, 1988), p.86
     3. 글리슨 아쳐, 상게서, p.320
     4. David J.A. Clines, Job 1-20(Waco: Word, 1989), pp.10-11
     5. 글리슨아쳐, 상게서, p.320
     6. 상게서, pp.320-321
     7. David J.A. Clines, Ibid.,
     8.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Old Testament(Victor Book, 1985), p.717
     9. Barne's Notes on the Old Testament, Job(Grand Rapids: Baker, 1987), p.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