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욘 3:10) 요나는 니느웨 성의 죄악이 관영하므로 그 성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라는 소명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니느웨 성으로 가는 대신 다시스로 도망하고 말았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죄 많은 니느웨 성에 가서 심판을 외치는 것이 힘들고 위험스럽기만 해서는 아니었다. 4장에 요나의 불평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꾸짖으심을 보면 그는 니느웨 성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선민 의식이 강한 이스라엘의 선지자였다. 그런데 이 본문에는 몇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먼저 우리말 성경에는 니느웨 성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하여 모두 돌이켰다는 말로 번역을 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불변하시는 분이 아니신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히브리어에는 두 말이 서로 다르다. 니느웨 사람들이 돌이켰다는 말은 회개(sub)를 가리켰고 하나님께서 돌이켰다는 말은 회개란 말 대신 측은하게 생각하다 가엽게 여기다(relert 나 to be sorry)는 말(niham)을 가리켰다.1) 따라서 이 문제는 여기 두 말을 번역상 그 의미를 구별하지 않은데서 비롯되었다. 설사 여기서 하나님이 후회하셨다 또는 뜻을 돌이키셨다는 말을 한다고 해도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불변의 은혜와 죄악을 용서하시며 믿는 모든 자에게 심판을 면제하시는 것과 똑같이 그를 미워하며 믿기를 거부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을 거부하는 모든 자를 심판하신 것을 일컬어 돌이키셨다고 하였다.2)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속성에서 조금도 변함이 없으셨다. 여기서 변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며 믿기를 거부하고 그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죄를 짓기에 담대했던 니느웨 성 사람들이다. 그들이 죄를 회개하므로 하나님의 불변의 속성인 은혜와 용서와 구원을 받게 된 것뿐이다. 여기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니느웨 성 사람들이 정말 회개했는가? 그 성 전체가 회개했다면 역사적인 어떤 증거가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니느웨 성의 회개를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1) 주전 제 8세기 초반에 앗수리아의 자료가 매우 희소하다. (2) 니느웨의 회개는 특별히 요나의 사역에 부합시켜서 볼 때 그것은 예외적이거나 기대 못할 일이 전혀 아니었다. 와이스맨(Wiseman)은 그 시기가 아슐-단 3세(Ashur-dan 772-755 B.C.)나 아슐-니라리 4세(Ashur-nirari, 754-745 B.C.)때로 그 시기는 국가적인 긴장과 혼란의 시기였다 (3) 본문은 그들의 회개의 결과 니느웨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예배자가 되었음을 암시하지 않는다.3) 그 예로 아합 왕의 경우 나봇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용서를 받았으나(왕상 21:27-29)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 중에 한 왕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왕상 21:25-26).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성에 대한 심판의 손을 거두시었으나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나홈 선지의 예언처럼 니느웨는 후에 철저한 멸망을 경험하게 된다.4) 이제 마지막으로 요나의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정말 그를 선지자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자. 요나서는 예언의 조건적 특성을 지닌 책이다. 다시 말해서 그 성취는 사람의 장래의 자세와 행동에 달렸다.5) 요나서뿐만 아니라 구약의 모든 심판의 예언은 조건적 요인에 근거해 있다. 하나님의 멸망에 대한 예언은 필연적으로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다.6) 따라서 니느웨 성의 멸망을 외치라고 명령하셨던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바꾸신 사실은 하나님의 실패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 자신의 불변의 속성에 참되도록 그의 열정적인 소원을 나타내신 것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요나의 예언은 하나님의 예언이었고 그 예언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니느웨 성의 구원은 요나가 하나님의 예언자임이 증명한 셈이 된다. 요나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소개해 준다. 우리 모두가 죄와 허물로 죽었었고 하나님의 심판밖에 받을 것이 없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죄가 사해지고 구원받게 되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물러가고 자비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다. 전도자는 요나처럼 민족적 우월감에 빠져 믿지 않는 다른 민족에 대해 차별하거나 시기심으로 지배되어서는 안 된다. 전도자는 죄인 누구라도 믿어 구원받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날마다 그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넓어져야만 한다. 주 1. T. Desmond Alexander, Jonah(Downers Grove: IVP, 1988), p.124 히브리어 niham을 repent로 번역한 영역 성경은 AV, RV. RSV이고 relent로 번역한 성경은 JB. NIV이다. 2. Theodore Laetsch, Minor Prophet(St. Louis: Concordia, 1957), p.237 3. T. Desmond Alexander, Ibid., p.125 4. Billy K. Smith and Frank S. Page, Amos, Obadiah, Jonah(Bradman & Holman, 1995), p.272 5. The Bradman Bible Commentary, Vol.7(Nashville: Bradman, 1972), p.178 6. Loslie C. Allen, The Books of Joel, Obadiah, Jonah and Micah(Grand Rapids: Eerdman, 1987), p.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