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잡으리라 하였으나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그 사람들은 요단 나루턱까지 쫓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수 2:4-6)
성경은 거짓말을 죄라고 단정한다. 레위기 19:11에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하였고 잠언 12:22에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하였다. 신약에서도 바울은 에베소서 4:25에서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하였다. 반면에 거짓말도 만일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다른 죄처럼 갈보리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로 완전하게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죄인을 취급하시는 원리는 죄없는 아들이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신 것처럼 항상 죄는 정죄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은 죄인을 그들의 죄 때문에 그의 구속의 참여자로 영접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 때문에 받으신다. 심지어 아브라함까지 그의 아내 사라의 신분에 대해 거짓말하였으며(창 12:12-19) 다윗도 사울이 그를 놉 땅에 나라의 일로 보냈노라 말했을 때 대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거짓말하였다. 그는 실제로는 그의 생명을 구하려고 사울에게서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삼상 21:2)⑴. 그러면 라합의 경우는 어떤가? 그녀는 분명히 거짓말을 하였다. 그 자체가 죄인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거짓말을 승인해 주셨거나 인정하지 않으셨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왜 성경은 라합의 신앙을 칭찬하기까지 하는가? 히브리서 11:31에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다"고 했고 야고보 2:25에는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하였다. 거기서 야고보 사도는 행함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의 주제는 행함이 있는 참 믿음이었다. 그러므로 두 성경이 모두 라합의 이 사건을 들어 그의 신앙을 칭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라합의 경우는 특수하였다고 볼 수 있다. 라합이 여기서 거짓말을 한 것은 결코 이기적인 목적 즉 자신의 안전이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거짓말은 다 이기적인 목적에서 나온다고 볼 때 라합의 경우는 달랐다는 말이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기 나라 여리고의 왕보다 더 신뢰하였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신 일과 요단 건너편에서 두 왕들을 파하신 소식을 들었다(수 2:8-12). 그리고 정탐꾼을 받아들이고 다른 길로 보냄으로서 그녀의 신앙을 증명하였다. 이런 믿음에서 그녀에게는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한 지역의 왕을 섬길 것인가를 선택해야 했을 때 더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대답을 할 수 있었다⑵. 우리가 만일 그녀의 거짓말을 한 경우를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그녀에게 위험천만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위험천만한 모험이었다. 그녀에게는 차라리 참 말을 하는 것이 그녀와 그녀의 가정을 유익하고 안전하게 하는 것이었다. 더 나가서 라합이 이렇게 거짓말을 해야 했던 것은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에게 그녀가 그들을 숨겨 준 것을 여리고의 왕이나 군인들에게 결코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라합의 거짓말은 이스라엘 정탐꾼에 대한 약속의 이행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라합의 행위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것이었다면 그것은 일반적인 거짓말과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라합이 하나님께 용납되고 여리고성이 멸망했을 때 그녀와 그의 온 식구가 살고 후에 유다 지파의 살로매와 결혼하여 예수님의 육신적 조상이 되는(마 1:5-6) 축복을 받게 된 것은 그녀가 한 거짓말 때문이 아니라 생명의 위협까지도 무릅쓴 그녀의 믿음의 행위 때문이었다. 역시 라합은 참으로 도덕적 갈등에 직면했었다. 그녀가 동시에 정탐들을 구하고 왕의 군사들에게 진실을 말하기는 불가능하였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피할 수 없는 도덕적 충돌에 대한 책임을 라합에게 지우지 는 않으실 것이다. 확실히 사람은 보다 더 고상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보다 덜 중요한 법을 지키지 않는데 대한 책임은 없을 것이다. 정부의 명령이 의와 모순일 때 신자는 그 명령에 순복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 출 5장; 단 3, 6장; 계 13장). 히브리 산파들이 이스라엘의 남아들을 살리기 위해 한 행동은 아마 가장 분명한 실례가 될 것이다( 출 1:15-21)⑶.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목적을 이루시는데 있어서 아주 이상한 방법으로 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의 죄 많은 책략에도 불구하고 역사하기 때문이다⑷.
주 1. G.L. Archer, Encyclopedia of Bible Difficulties(Grand Rapid: Zondervan, 1988), pp.155-156 2. Walter C. Kaiser, Jr,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IVP, 1988), p.96 3. Norman Geise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e Ask(Victor Books, 1992), p.135 4. Walter C. Kaiser, Ib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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