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의 연대는 이견이 많다. 많은 고고학자들과 역사가들은 애굽에서 주전 1290년에 나왔고 1250년에 가나안 정복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주장들은 주전 1250년경에 가나안에 도시들이 파괴되고 불에 탄 주요한 발견들을 근거로 하고 있다. 따라서 고고학자들은 불에 탄 흔적의 발견을 여호수아에 의한 가나안 정복의 증거라고 너무 쉽게 결론한다. 그러나 성경 본문에는 여호수아가 포획한 도시들을 불태웠다는 기록이 없다. 그는 여리고(6:24), 아이(8:19), 그리고 하솔(11:11)을 불태웠을 뿐이다. 여호수아 11:13은 하솔이 북쪽 작전 기간중에 이스라엘이 불태운 유일한 도시라고 기록한다. 따라서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불에 탄 지대는 사사들의 시대에 있었던 파괴를 가리킨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적 증거들이 가나안 정복을 주전 1406년경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열왕기상 6:1에 의하면 솔로몬은 출애굽 480년 후 그의 통치 제 4년에 성전 건축을 시작하였다. 솔로몬은 40년을 통치했으며(주전 970-931) 그의 통치 제 4년은 주전 966년이 될 것이다. 주전 966년을 근거로 해보면 출애굽의 연대는 480년 뒤로 물러난 주전 1446년이 된다. 40년 광야의 방황이 있었으므로 여호수아의 정복은 주전 1406년이 된다. 물론 가나안 정복을 보다 더 후대로 보는 견지에서는 1240년경으로 보나 출애굽을 보다 더 초기로 보는 전통적인 견지에서는 가나안 정복은 1400년대가 된다⑴. 그러면 가나안 정복을 1406년경으로 주장할 수 있는 증거들이 있는가? 래니(J. Carl Laney)는 아래 세 가지 사실을 그 증거로 제시한다. 첫째로, 사사기 11:26에서 입다는 암몬 왕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이 삼백 년동안 암몬에 거주했음을 기억하게 하였다. 입다의 사사직이 주전 1100년보다 늦지 않으므로 이스라엘의 트랜스요르단에 도착은 주전 1400년 후가 될 수 없다. 둘째로, 아말나 편지들(대략 주전 1400-1366)은 하비루(Habiru)인들이 남쪽과 중앙 팔레스틴을 침입했다 고 언급한다(분명히 하비루는 히브리와 어원적으로 같다고 생각한다). 예루살렘의 총독, 아브디-히바(Ab- adi-Hiba)는 침입한 하비루(Habiru)를 대항하는데 도움을 구하기 위해 바로 아케나텐(Akhenaten(주전 1375-1353)에게 많은 편지를 썼다. 셋째로, 여리고의 위치에 대한 존칼스탱의 발굴(John Garstang, 1930-36)은 주전 1400년경에 있었을 전쟁으로 인한 파괴의 발견으로 귀결되었다. 도기와 단충적 고려 그리고 카본-14의 보다 근래의 연구는 모두 주전 1400년의 성경적 연대의 정확성을 확증해 준다⑵. 가나안의 정복은 여호수아서나 사사기서 심지어는 열왕기서에서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급속하게 단지 수개월이 소요된 사건이 아니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가나안의 정복이 늦어진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고 또 정쟁의 희생적인 부담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다만 여호수아에 의해 개략적으로 가나안이 정복되고 땅이 분배된 때를 기준으로 본다면(14:7-10) 가나안 정복은 요단을 건넌 주전 1406년보다 육년 내지 칠년 후 주전 1400년경이 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개략적으로 정복하는데만도 6-7년의 세월이 소요된 셈이다.
주 1. Ryrie Study Bible(NIV)(chicago: Moody, 1986), p.289 2. J. Carl. Laney, Answers to tough Questions(Grand Rapids: Kregel, 1997), p.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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