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곤비하여 깊이 잠든지라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취하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시스라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사사기 4:21) 위의 말씀에는 시스라가 피곤하여 잠들었을 때 야엘이 그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으므로 기절해 죽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시스라는 잠을 자다가 누운 채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5:27에는 시스라의 죽음에 대해 조금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시스라가 야엘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었다고 하였다. 그러면 어느 구절의 설명이 더 정확한가? 우선 이 두 구절은 문학적 표현 방법이 달랐다. 사사기 4:21은 산문체의 사실적 표현이고 5:27은 시적인 표현이다⑴. 그리고 후자는 시스라의 죽음을 보다 더 자세하게 설명한 것뿐이다. 그러므로 크게 보면 산문체적 표현과 시적인 표현 사이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5:27에 엎드러졌다는 말은 자주 어떤 사람의 죽음을 가리키는데 비유적인 뜻으로 쓰였다. 따라서 시스라의 죽음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⑵. 이렇게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잔인하게 압제했던 시스라는 부끄럽게도 한 여인의 손에 죽고 말았다(참고; 9:54). 그러나 과연 헤벨의 아내 야일이 감히 가나안의 용사요 왕인 시스라를 장막 말뚝으로 죽일 수 있었을까? 이 문제의 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당시 여인들은 보통으로 장막을 치고 걷는 일을 했으므로 야엘은 어떻게 그녀의 도구를 다룰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 여기 야엘이 자기 집에 들어 온 시스라를 그렇게 잔인하게 죽인 것은 정당한 일인가? 시스라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 대한 자비를 얻지 못했으며 일반적으로 가나안 족속들에게 내려진 완전한 멸망의 선고 아래 있었을 것이다(신 7:2; 수 6:17). 또 아합이 다메섹의 왕 벤하닷을 살렸을 때(왕상 20:42) 하나님께서는 그 대신에 아합 왕이 죽을 것이라 하셨고 사울 왕이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렸으나 사무엘은 친히 그를 죽였다(삼상 15:33). 원수를 이기는 승리는 일반적으로 그 지도자들이 죽기까지는 완전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⑶. 따라서 여기 시스라의 죽음은 공의의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심판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 하나님의 뜻은 부당하다고 말할 수 없다. 시스라의 죽음은 행한 대로 받게 되는 원리에 따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는 그가 잔인하게 선민 이스라엘을 오랫동안 압제한 것만 보아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른 드보라의 예언(참고; 4:9)의 성취였다. 시스라의 죽음에는 두 여인이 존귀케 되리라고 했는데 드보라가 그것을 시작했고 야엘이 그것을 끝냈다⑷. 그러므로 위의 두 구절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전자(4:21)는 사실적 기술이고 후자(5:27)는 시적인 표현이다. 시스라는 예언대로 죽었고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한 죄에 대한 심판으로 부끄럽게도 여인의 손에 죽고만 것이다.
주 1. Robert G. Boling, Judges(New York: Doubleday, 1985), p.98 2. Norman Geilser &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147 3. Herbert Wolf, Judges, E. B. C. Vol.3(Grand Rapids: Zondervan 1992), p.407 4. John F. Walvoord & Roy B.Zuck, the Knowledge Bible Commentary, old Testament(Victor Books, 1985), p.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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