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엘리야는 누구인가?
RevSuh  2008-08-05 12:06:31 hit: 3,118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말 4:5-6)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보내시기로 약속한 엘리야는 세례 요한을 가리켰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세례 요한을 엘리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께서 친히 세례요한을 오리라 한 엘리야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 11:14). 랍비와 교부들 사이에 널리 퍼진 전통은 하늘로 올라간 선지자 엘리야가(왕하 2:11) 다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Keil).1) 그러나 세례요한 자신이 자기는 엘리야가 아니라 하였다. 따라서 이 말은 엘리야가 인격적으로 나타난다는 말씀이 아니었다. 다만 엘리야의 능력과 정신으로 그의 시대에 불경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외치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여기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로 그 엘리야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오리라고 한 점이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분명 예수님의 초림을 가리키지 않을 것이다. 구원을 위한 날이기보다는 심판의 날임을 암시해 준다.  이 날은 요엘서 3:4에 나오며 요엘서 2:11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크고 무섭고 두려운 날로 임박한 심판의 날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3:1, 5, 17, 19, 21; 4:1, 3).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강림과 연관시켜 본다면 초림이기보다는 재림이 더 잘 맞는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엘리야가 와서 하는 사역이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한다는 말씀이다.  많은 주석가들은 이 말씀을 2:10-16에 언급된 혼합 결혼이나 이혼에 의해 야기된 가정의 불화를 다시 화목케 할 것으로 해석한다.  엘리야의 도래의 주목적이 새로운 사회 질서를 세우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은 고대 근동의 종말론에 지원 받고 있는 예레미아스(Jeremias)의 이론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말론적인 기대가 새로운 사회질서의 구축이라는 주장과 그것이 엘리야의 사명이었다는 주장은 본문과 잘 조화되지 않는다.
  
차라리 여기 돌린다는 말(hesib)은 사회적인 질서보다는 언약 관계에 더 연관이 있는 말이다.  따라서 엘리야가 왔을 때 그는 언약 관계를 회복할 것이다.

스카버트(Josef Scharbert)의 주장처럼 아비들과 자녀들 간에 연대 책임은 언약 관계로부터 결정되는 것이어야 한다.2)  따라서 여기서 아비들은 그 민족의 조상들로 그들의 시대에 경건했던 사람들이요 자녀들은 말라기시대 그들의 죄를 짊어진 후손들이었다.  그 둘 사이의 간격은 하나님을 향한 공동 사랑의 결핍이었다. 그 아들들 안에서 아비들의 마음을 회복시킴이요 그들에게 아버지의 기질과 소원을 주는 것이었다.3)
  
이렇게 볼 때 여기 말라기 4장의 예언은 예수님의 초림과 그의 오심을 예비한 세례 요한의 사역과도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7:11에서 엘리야가 과연 와서 이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고 하셨으나 사실 엘리야는 이 모든 일을 회복하지 못하고 순교하지 않았는가?
  
그러면 우리는 이 구절(말 4:5)에 엘리야를 누구로 보아야 하는가?
초대 교회 교부들은 초림 때는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으로 세례 요한이 왔으나 재림 전에는 엘리야가 인격적으로 오리라고 보았다. 이것은 초대 교회 신자나 유대인들이 다 같았으며 로마 캐토릭 학자들도 수납하는 해석이다.  킴치(Kimchi)와 에스라(IbnEzra)는 두 사람을 구별해서 하나는 엘리야로(3:23) 다른 하나는(3:11) 천사나 메시야 벤 요셉으로 본다.  엘리야는 다윗의 후손이 오시기 하루나 삼일 전에 와서 내외적으로 이스라엘을 새롭게 한다고 한다.4)
  
순교자 져스틴(Justin Martyr)도 엘리야가 주님의 재림의 크고 무서운 날 선두 자가 되리라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견해는 역시 암브로스(Ambrose)나 어거스틴(Augustine) 크리소스톰(Ch- rysostom), 씨릴(Syril of Alexandria)의 것이었다.5)  또 다른 한 가지 해석이 있다.  이 이론은 엘리야를 말라기 2:4에 화평의 언약을 맺은 비느하스와 연관짓는다(민 25:11-13). 이 전통에 따르면 엘리야와 비느하스는 하나이거나 같을 것이라고 한다.6)
  
만일 여호와의 무서운 날을 심판의 날이나 예수님의 재림의 날로 본다면 그날을 예비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들은 세례요한, 어거스틴, 칼빈, 멘노시몬스, 루터, 쯔윙글리, 무디, 그리고 빌리그래함 등이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이들 이상의 선두자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 사람은 요한계시록 11:3-12에 나오는 두 증인 중에 하나일 것이다.7)
  
거기서 두 증인은 엘리야와 모세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인데 엘리야는 불로 원수들을 태웠고(왕하 1:10) 하늘을 닫아 비를 오지 않게 했으며(왕상 17:1) 마찬가지로 모세도 물을 피로 변하게 했고(출 7:14-18) 많은 재앙으로 땅을 쳤다(출 8:12).  그들은 모두 악인들의 양심을 괴롭게 하고 심판했다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세계 종말 전에 엘리야와 모세가 돌아오리라는 공통된 기대는 당연하였다(말 4:5; 참고; 막 9:11과 마 11:14; 참고, 요 6:14; 7:40).  더구나 모세와 엘리야는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함께 나타났고(막 9:4) 두 사람이 모두 하늘로 승천했다(왕하 2:11, 모세의 승천(Assumption of Moses).  따라서 벡위스(Beckwith)는 그들 선지자는 엘리야와 모세의 정신으로 올 말세의 두 위대한 선지자들인데 이스라엘에 회개를 외칠 것이라 하였다.8)  거기 두 증인이 종교와 시정을 대표하는 두 지도자라면 역시 엘리야와 모세를 가리킬 것인데 그들은 모세의 지팡이와 엘리야의 겉옷을 계승할 것이다.9)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결론할 수 있다.
여기 엘리야는 세례요한이기보다는 실지로 엘리야를 가리킬 것이다.  그가 재림 직전에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엘리야나 모세와 같은 충성되고 능력있는 어떤 인물을 가리킬 것이다.  여하튼 엘리야와 연관이 확실한 인물일 것이다.

  주
  1. C.F. Keil, Minor Prophets, Vol.2(Grand Rapids: Eerdmans, 1980), p.471
  2. Pieter A. Verhoef, Haggai and Malachi(Grand Rapids: Eerdmans, 1987), p.342
  3. The Brodman Bible Commentary, Vol.7. Hosea-Malachi(Broadman, 1972), p.394
  4. Pieter A. Verhoef, Op.cit., pp.342-345
  5. E.B. Pusey, Micah to Malachi(Grand Rapids: Baker, 1987), pp.499-450
  6. Pieter A. Berhoef, Opcit., p.346
  7. Walter, Kaiser, Jr., More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IVP, 1992), p.104
  8. Robert H. Mounce, Revelation(Grand Rapids: Eerdmans, 1979), pp.222-223
  9. J. Jussyngberde ford, Revelation(New York: Doubleday, 1975), p.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