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있을진저 피 성이여 그 속에서는 궤휼과 강포가 가득하며 늑탈이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나 3:1) 니느웨 성의 잔인성은 성경의 언급을(대하 33:11; 사 33:11; 37:38; 욘 1:12; 나 3:1) 떠나서도 역사적인 증거가 충분하다. 여기 피의 성이란 말은 피 흘리는 성이란 뜻이다. 아슈바니팔 궁궐의 그림들 중에 하나는 엘람 인들을 이긴 승리의 자축에서 왕비와 그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그 대연회장 안에는 요리상 곁에 한 과목이 보이는데 그 가지 중 하나에는 패전한 왕의 머리가 매달려 있다. 과연 피의 성 니느웨였다.1) 그뿐이 아니었다. 니느웨는 자국의 많은 시민들도 조직적으로 처형시켰다. 머리와 손들이 몸에서 잘려 나갔고 라키쉬(Lachish)의 어떤 주민들은 날카로운 나뭇가지에 찔려져 있었다. 모든 전쟁이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차별없이 잔인하나 앗수리아는 폭력과 피흘림에서 고대의 근동의 모든 나라들을 능가하였다.2) 그 역사적인 사례를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아슈마니팔 왕(주전 883-859) 나는 키나부(Kinabu)에서 그들의 전사 6,000명을 칼로 죽였으며 3,000명의 포로를 불에 태웠다. 나는 그들 중에 한 명도 인질로 부려먹기 위해 살려두지 않았다. 그들의 총독 후라이(Hulai)를 생포해서 그의 가죽을 벗겨 그 가죽을 담다무사(Damdamusa) 성벽에 널어놓았다. 그리고 페투라(Petura)에서 700명을 그들의 성문을 향하여 말뚝에 꿰뚫어 처형시켰다. 살만에셀 Ⅲ(주전 859-824) 나는 그들의 전사들을 그 성에서 칼로 죽여 그 시체를 쌓아 올렸으며 그들의 전사들의 시체로 넓은 들을 메웠다. 나는 그들의 피로 산들을 붉은 양털처럼 물들였다. 샴시아다드 Ⅴ(주전 824-810) 내가 그들의 전사 13,000명을 칼로 쳐 죽였다. 그들의 피가 그들의 성의 광장을 통하여 흐르게 하니 시냇물과도 같았다. 내가 그들의 투사들의 시체를 더미로 쌓아 올렸다. 디글랏빌레셀 Ⅲ(주전 745-727) 내가 둘-일라티(Dur-Illatai)에서 그 곳의 백성 4,050을 그들의 소유, 그들의 전리품, 그들의 집과 재산, 그들의 아내, 그들의 아들들, 그들의 딸들 그리고 그들의 신들과 함께 빼앗았다. 아슈바니팔(주전 669-663) 우아잇(Uaite) 에서 내가 내 날카로운 단도로 그의 턱을 뚫었다. 내가 그의 턱에 밧줄을 꿰어 그 위에 개 사슬을 붙여서 니느웨 내벽의 동문의 개집에 보초로 만들었다. 알베라(Arbela)에서 나는 그들의 혀를 뽑았고 껍질을 벗겼다.3) 이렇게 니느웨는 살인과 잔인함에서 당시 근동의 어느 나라도 능가하였다. 이런 이유는 니느웨는 피의 성이라고 일컫기에 적합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중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천연적인 요새임에도 불구하고 멸망을 자초하고야 말았다. 주 1. Theodore, Laetsch, Minor Prophets(St. Louis: Concordia, 1975), pp.308-309 2. Bruce Waltke, Micah the Minor Prophets(Grand Rapids: Baker, 1993), p.812 3. Daniel D. Luckenbill, Ancient Records of Assyria and Babylonia, Vol.2.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26(J. Carl Laney, Answers to tough Questions, pp.167-1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