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 51:11-12)
우리는 성경 계시의 점진성을 믿는다. 따라서 신약의 어떤 교리들이 구약에서 별로 언급되지 않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위의 본문의 경우도 그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본 시편 51편의 성령은 신약에서 언급하고 있는 같은 성령이신가? 그렇지 않다면 옛 언약의 계시의 상태를 위해서는 너무 진보된 성령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신약에서 성령은 신자를 떠나지 않는다. 성령님은 구원의 순간에 신자 안에 내주 하신다(참고, 요 14:16; 롬 8:91)(1). 이것이 사실이라면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말라는 기도는 모순처럼 보인다. 따라서 본문의 주의 성신은 성령 대신에 다른 뜻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겠는가? 같은 맥락에서 본문의 문제도 크게 두 가지 다른 해석이 있을 수밖에 없다. 먼저 본문의 주의 성신을 성령으로 보지 않는 해석이 있다. 반즈(Barnes)는 여기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여기서는 자원하는 영 다시 말해서 다윗 자신의 마음이나 영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다윗의 그 기도는 하나님께서 그를 자원하는 영으로 붙들어 주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명령들을 순종하도록 준비되며 충성스럽게 그를 섬길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라 하였다(2). 제미슨(Jamieson)도 여기서 영을 다윗의 영으로 보았으며(3) 칼빈(Calvin)역시 다윗은 왕의 영에 대해서 말씀하며 왕이었던 다윗은 그의 직무 수행을 위해 적합한 자유와 기쁨의 영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였다(4). 이렇게 여기 주의 성신을 다윗의 영으로 보는 학자들은 신자에게 하나님은 성령으로 떠나지 않고 내주 하시나 그들의 죄 때문에 섬김에서 버림받게 될 수도 있음을 가리켰다고 본다(참고, 고전 9:27). 다음으로 주의 성신이 성령을 가리켰다고 보는 해석이 있다. 주의 성신이 성령임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하나님의 영은 내적 존재 속으로 들어오는 분이기보다 인격에 부어 주시거나 임하시는 분이란 사상이 가장 잘 부합한다고 본다. 따라서 여기서 주의 성신은 신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견고하며 의지할 수 있는 영이라고 본다(5).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해석을 지지한다. 그러나 이 해석은 구약 성경에 언급이 너무 적은 약점을 안고 있다. 구약 성경에서 성령이라는 완전한 표현은 시편 51:11과 이사야 63:10 그리고 11절뿐이다. 성령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단어는 루아(rwh)인데 378회 나오며 바람, 영, 방향, 옆구리 등등으로 쓰였다. 그런데 특별히 에스겔 37:1-4은 골짜기의 마른 뼈에 대한 언급에서 하나님의 영은 생명을 주시는 능력으로 묘사하였다. 따라서 거기서 주의 신(영)은 신약의 성령의 사역과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여기 시편 51:11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에게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성령을 거둬 가실까가 두려웠다. 그리고 이런 염려는 밧세바와의 범죄로 크게 고민에 빠졌던 다윗에게는 당연한 관심사였을 것이다. 이처럼 구약에 성령이 이미 역사하셨고 신자들 안에 임재해 계셨다면 왜 신약에 오순절 사건이 필요한가? 그것은 오순절 사건에 와서야 이미 진행에 있었던 성령의 충만이 이루어졌으나 벌써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예수님이 성령께서 구원을 이루실 역사를 말씀해 주신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에서 주의 성신은 신약의 성령과 똑같은 성령이시라고 결론할 수 있다. 성령은 이미 구약의 신자들과 함께 계셨고 모든 믿는 자와 함께 계셨다. 그것은 마치도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이 구약에 예견되었을지라도 갈보리 사건이 필요한 것처럼 비록 성령의 유익과 그 사역이 구약에 이미 소개되었을지라도 오순절이 필요한 것과 똑같은 것이다(6). 이렇게 성령의 역사도 신약에 와서 오순절 사건 이후에는 항구적으로 교회와 모든 성도에게 더욱 충만하게 임재하시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도 구원받은 구약의 성도들이 아직은 완전한 희생이신 예수님의 계시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용서의 충만한 확신과 영적 새로워짐을 받지 못한 것과도 같았다(히 10:1-18)(7).
주 1.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Old Testament(Victor Books, 1985), p.833 2. Barnes' Notes, Psalms. Vol.2(Grand Rapids: Baker, 1987), p.89 3. Jamieson, Fausset & Brown,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Grand Rapids: Zondervan, 1961), 427 4. John Calvin, Commentary on the Book of Psalms, Vol.2(Grand Rapids: Baker,1989), p.301 5. Marvin E. Tote, Psalms 51-100(Dollars: Word Books, 1990), p.22 6. Walter C. Kaiser, Jr. More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IVP, 1992), p.208-209 7. Willem A. Vangemeren, Psalms, E. B. C, Vol.5(Grand Rapids: Zondervon, 1991), p.3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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