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도 주무시는가?
RevSuh  2008-08-01 14:50:51 hit: 1,261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고 우리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 까 우리 영혼은 진토에 구푸리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우리를 구속하소서"  (시 44:23-26)

이 시의 문제점은 하나님께서 인간처럼 피곤하셔서 밤에는 잠을 주무셔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여기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라는 표현은 열왕기상 18:27에서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그들의 기도에 응답이 없는 것을 보고 조롱한 말과 비슷하다.  어찌 살아계신 하나님께 그런 표현을 감히 한단 말인가?  더 나아가서 시편 121:4은 그 반대로 말씀하고 있지 않는가?  실로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다.
  
그러면 이렇게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위의 표현들은 어떻게 그 조화가 가능한가?
우리는 어떻게 이 본문을 해석할 것인가?
먼저 이 시편 44편이 어떤 형편에서 기록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시는 이스라엘의 군대가 원수에게서 패배한 후 구원을 호소하는 기도이다. 특별히 이 시는 과거의 영광스러움과(1-8절) 현재의 재난과를 대조시키고 있다(9-16절).  지금 이스라엘은 전투에서 패하여 종일 그들의 원수들에게 능욕과 모멸을 당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잊지 않았으며(17-18절) 언약에 성실하였다(18-22절).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저들의 구원과 방어에 성실하시지 않느냐는 것이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은 것은 모두 하나님의 잘못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 시는 욥기를 연상케 해 주며 같은 근거의 문제 즉 하나님의 신실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전쟁에서의 참패와 같은 민족적인 재난은 하나님께 대한 범죄의 심판으로서만 올 수 있는 결과가 아닌가?  당시에 전쟁은 나라와 나라의 대결이기보다 신과 신의 대결이라고 생각했으며 실제가 그러하였다.  따라서 자연히 왜 하나님은 의인과 의로운 백성에게 패배를 허락하시는 가고 의문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는 거기서 하나님께 대한 강한 질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욥기에서처럼 고난과 고민 중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여 기도한다.  따라서 이 시는 하나님과 그의 방법에는 많은 신비가 있으나 우리는 지속적으로 그를 신뢰해야 하며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지 낙담에서 나오는 불신의 의혹이 아니다(1).
  
다음으로 하나님은 정말 주무시는가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하기로 하자.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은 졸거나 주무시는 나약한 인간이 아니시다. 칼빈(Calvin)은 에피큐러스(Epicurus)의 신에 대한 관념을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의 신 관념이란 하늘에 그 거처를 둔 신은 단지 게으름과 쾌락을 즐기고 있다는 천박한 것이었다(2).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그런 인간이 만들어 낸 관념적인 신이나 우상이 아니시다.
  
그러면 왜 이 시인은 하나님이 주무시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 사이에 간격에서 나온 표현이었다. 하나님이 정말 주무신다고 믿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곤경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관심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하나님께 신적 전사로서 일어나시라는 것이었다(참고, 7:6)(3).  하나님이 주무신다는 이 표현은 그의 백성의 기도에 대해 응답을 하시지 않으시므로 그가 주무시는 것이 아니신가 하는 인상을 준 것뿐이다(4).
  
따라서 이 시인에게 하나님의 주무심이나 무관심은 외형적일 뿐이요 뒤에 있는 실재는 이 시편의  마지막에 주어진 말씀 하나님의 견고한 사랑이다(5). 이런 맥락에서 이 시는 하나님의 무관심에 대한 원망이나 불평 혹은 낙심의 한숨이 아니다.
  
그 반대로 군대의 용어로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이다.  여기 하나님이여 깨소서 일어나소서는 잠을 언급하기 보다 사사기 5:12에 나오는 드보라의 노래와 유사한 군사적 행동이다.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찌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똑같은 전통적인 전투의 노래들이 언약궤가 이스라엘이 전투에 나아가는 행군의 앞에서 나아갈 때에도 다시 쓰였다.  궤가 떠날 때에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민 10:35)(6).
  
그러므로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주무신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구절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하나님의 약속과 실제에는 간격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의 방법이나 시간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약속에 성실하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애와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시다(26절). 우리는 기도 응답이 일시적으로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어야 하며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다.

     주
     1. Peter C. Craigie, Psalms 1-50(Waco: Word, 1983), p.335
     2. John Calvin, the Book of Psalms, Vol.II(Grand Rapids: Baker, 1980), p.171
     3. William A. Van Gemeren, Psalms, E. B. C. Vol.5(Grand Rapids: Zondervan, 1991), p.342
     4. Mitchell Dahood, Psalms 1-50(Garden City: Doubleday, 1965), p.267
     5. Derek Kidner, Psalms 1-72(Downers Grove: IVP, 1973), p.170
     6. Walter C. Kaiser, Jr.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IVP, 1988),  pp.158-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