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슥 11:12-13)
이 본문의 예언이 신약의 마태복음 27:7-10에서 성취되었음을 누구나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경우에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1. 스가랴의 예언적 상징주의의 어떤 상세한 내용은 역사적 설명이 적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2. 마태가 이 말씀을 예레미야의 글로 돌리지만 분명히 스가랴서를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첫 번째 문제에 대답해 보자.
여기 12절에서 선지자는 그의 섬김과 백성을 경계하기 위한 대가를 요구한다. 물론 그는 그들이 그들의 목자를 비열하게 취급했으므로 그에게 대가 주기를 원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만일 줄 생각이 없으면 그만 두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내 품삯으로 은 삼십 개를 주었다고 한다(12절). 그 은 삼십 개는 종이 소에 의해 받쳤을 때 배상한 액수였다(출 21:32). 여기서 메시야로 분장한 스가랴는 그 상당한 품삯을 (확실히 풍자적으로 비꼼으로 말하였다) 취하라 그리고 그것을 주의 성전에 있는 토기장이에게 던지라는 충고를 받았다. 여기서 그것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관용구적 격언으로서 그것을 개에게 던지라 혹은 없애버리라는 의미였다.1) 그런데 문제는 성전 안에 토기장이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토리(C.C. Torrey)는 성전에 받쳤던 금과 은을 녹인 주조장(foundry)이 제이 성전에 있었다고 주장한.2)
또 발드윈(Joyce G. Baldwin)은 토기장이가 성전과 관련이 있었으며 그 이유로는 희생의 의식은 새로운 그릇들이 계속해서 공급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며(레 6:28) 토기장이의 조합이 성전에서 적은 직분으로 있어 왔다고 한다. 또 예레미야 18:6은 확실히 예레미야가 설교를 하면서 토기장이의 일을 한 것을 가리킬 수 있으며 성전 가까이에서 토기 항아리를 산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주장한다(19:1).3)
그러나 이 구절은 성전으로 그것들을 던진 것에 대한 은밀한 묘사일 것이다. 거기서 그것들이 취해져서 토기장이의 밭을 사는데 쓰였는데 그것은 더러운(tainted) 돈은 성전에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신 23:18). 성전 고에는 십일조와 하나님께 드린 값진 것만 둘 수 있었으며(수 6:24; 에 2:69; 느 7:70) 또 개인을 위한 은행으로 쓰이기도 했다( 2 macc, 3:10ff). 그러나 부도덕한 방법으로 취득된 돈은 거기에 둘 수 없었다. 따라서 이 구절이 마태복음 27:7-10에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에게서 완전하게 성취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선한 목자요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그의 공정한 품삯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유다가 이스라엘에게 스승에 대한 값을 정하고 요구하였다. 마태복음에서 그 조망이 바뀌었으나 그 의미는 같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메시아를 무가치하게 생각하였으며 배반자 유다에 의해 성전에 던진 돈을 제사장이 못마땅히 여겨 가난한 자들을 위한 장지로 쓰도록 토기장이의 밭을 사는데 쓰였으니 얼마나 정확하게 이 예언이 성취되었는가.4) 퍼로운(Perowne)은 왕의 초기 예언과 같이(9:9) 목자의 예언은 그것의 문자적 성취로 인해서 놀랍다. 은 삼십은 문자적으로도 그를 위해 지불된 고가였으며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값을 정한 것이라고 하였다.5)
이제 두 번째 문제를 살펴보자
왜 스가랴서의 글을 마태는 예레미야의 글로(마 27:9) 말씀하고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의 해답들이 제시되었다.
1. 마태는 포괄적으로 스가랴 11장이나 예레미야 32장을 인용하였다. 마태는 그 어느 구절도 문자적으로 정확하게 인용하지 않았다. 그의 요점을 세우기 위해서 이런 예언들의 다양한 요소들을 한데 묶었다. 마태는 당시의 관습대로 더 중요한 선지자의 이름을 쓴 것뿐이다.6)
2. 예레미야 18장과 19장이 담고 있는 사상이 스가랴서 11장에서 표명되었으므로 원래의 예레미먀의 글로 인용했다.
3.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사본들보다 초기의 것을 만들려는 서사자들의 실수였을 것이다.
4. 유대인들은 구약의 다른 그룹들을 그 두루마리의 첫 책에 따라서 이름을 붙였다. 스가랴서는 우연히 예레미야서의 두루마리 안에 있게 되었거나 혹은 그 두루마리에서 첫 책이 예레미야였을 것이다(Lightfoot).7)
따라서 스가랴서의 예언이 메시아에게서 이루어진 것을 확인한 마태는 그 예언을 메시아에게 적용시킬 수 있었다. 또 스가랴의 예언을 예레미야의 글로 인용한 것은 많은 히브리 사본들은 선지서들의 수집된 두루마리의 이름이 더 중요한 선지자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고 스가랴서는 예레미야의 이름으로 수집된 두루마리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주
1. Walter C. Kaiser, Jr.,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IVP, 1988), p.242
2. Ralph L. Smith, Micah-Malachi(Waco: Word, 1984), p.269
3. Joyce G. Baldwin, Haggai, Zechariah, Malachi(Downers Grove: IVP, 1972), p.185
4. Larry Richards, Bible Difficulties Solved(Fleming H. Revell, 1993) p.220
5. Kenneth L. Barker, Zechariah, E.B.C. Vol.7(Grand Rapids: Zondervan, 1985), p.677
6.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321
7. H. C. Leupold, Exposition of Zechariah(Grand Rapids: Baker, 1971), p.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