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슥 7:5)
스가랴 7:3에는 오월의 금식을 말씀하는데 비해 여기 5절에서는 오월과 칠월에 두 번 금식을 언급하고 있다. 루돌프(Rudolph)는 칠월의 금식은 아마도 바벨론에 의해 총독으로 임명되었던 그다랴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렘 41:1-3; 왕하 25:25).1) 그리고 슥 1:12대로 70년은 대략 주전 590-520까지 바벨론에 포로 되었던 종속 기간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칠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한 금식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이 금식은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가 연관된 사건들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위에 언급한 루돌프의 칠월 금식의 이유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이 금식이 유다의 바벨론에 의한 멸망에 대한 것이었다면, 저들은 쉽게 자기 연민에 빠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5절 마지막에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질문의 대답은 부정적일 것이 자명하다. 그것이 실제로 너희를 위한 것이 아니냐고 물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예루살렘은 중건되었고 그 사면 성읍들에도 다시 많은 백성이 거주하게 되었다. 멸망과 파괴의 사건은 기억으로서만 남아 있게 되었다. 따라서 과거 그 백성의 멸망에 대한 슬퍼함이나 금식은 하나의 기념 의식이나 형식에 불과하게 되고 말았다. 따라서 이런 의식을 지속해야 하느냐는 의문도 제기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 구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대하신 것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의 관심은 그들이 그 사건을 기념하고 금식을 지속할 것인가 아닌가가 아니었다. 왜 그 금식을 해야 했는가? 그 금식의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가고 멸망 당하게 된 이유를 깨달아 진정으로 회개하기를 기대하셨다. 저들이 그 금식의 절기를 지킬 것인가가 아니라 참되게 도덕적인 생활 방식에 헌신하는 것이었다.2) 그것은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고 심중에 도모하지 않는 것이었다(7:8-10).
그러나 그들의 금식은 단순한 종교적 의식이 되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순종으로 지원받지 못하였다(참고, 사 1:11-17; 58:1-7).3)
진정한 금식은 회개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참된 회개는 잘못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되며 삶의 전환 다시 말해서 잘못 가던 길에서 돌아서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금식의 핵심은 동기와 자세에 있다. 금식은 겸손의 내적 성향과 하나님을 향해 돌아가는 마음의 외적인 표가 되어야 한다.4) 금식을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그리고 어떻게 금식을 하는가가 더 중요했다.
주
1. David L. Petersen, Haggai and Zechariah 1-8(Philadelpha: Westminster, 1984), p.285
2. Larry Richards, Bible Difficulties Solved(Fleming H. Revell, 1993), p.219
3. Kenneth L. Berker, Zechariah, E.B.C. Vol.7(Grand Rapids: Zondervan, 1985), p.644
4. Ralph L. Smith, Micah-Malachi(Waco: Word, 1984), p.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