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슥 6:12-13)
여기서 순이라고 이름하는 사람은 누구를 가리켰는가? 그 사람은 과연 제사장직과 왕직을 함께 지니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구절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포로 후기에 어느 선지자를 가리켰는가? 바벨론에 포로 된 백성들이 성전의 재건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성전을 위한 선물과 함께 세 사람의 대표를 보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반응을 기뻐하시면서 선지자에게 그 금과 은으로 왕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라고 하셨다. 물론 그 행동은 상징적인 것이었으나 여기서 유다 지파에 속한 왕위가 레위 지파로 옮기는 것은 이해가 쉽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벌써 창세기 49:10-12에서 왕위를 유다 지파에 약속하셨을 뿐 아니라 오실 메시아 왕도 다윗의 혈통에서 나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삼하 7:12-20). 따라서 이 구절에 대해서 전통적인 메시아의 구절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 해석을 반대하는 현대 학자들도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11절에 면류관(왕관)을 복수로 보는데 14절에 가서는 단수로 쓰고 있다. 70인 역에서는 모두 주어와 동사를 단수로 썼다. 그러나 역시 본문 12절에서도 단수를 썼다(자기 곳).1) 따라서 여기서 왕과 제사장이 두 인물이 아니고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메시아의 구절로 본문을 생각하지 않는 현대 학자들은 한 인물로 인정은 하되 여호수아를 스룹바벨의 이름으로 대치시켜 조화를 꾀한다. 이 경우에 순(Semah)이란 명칭은 3:8에 나오는 말씀대로 장래 다윗 계통의 지배자에 대한 통칭으로 이해한다(렘 23:5; 33:15). 스가랴서 1-8장의 정치적인 문맥에 따르면 이 상징이 스룹바벨을 가리킨다는 데는 조금도 의심이 없다고 본다(Ackroyd). 그는 영광(엄위)도 얻을 것이다. 물론 시편 104:1 대로 그 엄위하심과 광대하심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나 그런 영광과 엄위가 인간 왕에게도 해당되며 그가 지배자로 서 그의 보좌에 앉아 다스린다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 왕의 역할에 적합하다는 것이다(왕상 1:46; 16:11). 그는 제이 성전을 재건함에 있어서도 왕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면 제사장이 될 것이란 말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왕으로서 스룹바벨은 대제사장 여호수아보다 그 지위에서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사장도 왕을 모셔 서 있는 신하와도 같을 것이며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고 했으니 두 사이 다시 말해서 다윗의 왕직과 제사장직 사이에 화평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 구절은 왕적 인물의 신분으로 스룹바벨을 강조하며 동시에 다윗 계통의 왕과 제사장 두 인물들의 상관적 지위를 설명한다.2) 그러나 이 구절이 스룹바벨 대신에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의 신분과 사역에 대한 예언임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그것은 우선 아람 탈굼역(의역) 예루살렘 탈무드(종교적 교훈의 모음) 그리고 미드라쉬(실제적 지혜) 그리고 유대인들은 일찍이 이 구절을 메시아의 구절로 간주했다.3) 다음으로 여기 순은 이 명칭이 메시아의 특성에 대한 네 가지 다른 양상임을 서술해 주는 네 개의 구절들에 의해 분명하다. 그는 왕이시며(렘 23:5-6), 종이시고(슥 3:8), 사람이시며(슥 6:12), 야외의 순이시다(사 4:2). 이 예언은 메시아의 특성과 다스림에 관한 네 가지 특성을 약속한다. 1. 그가 그의 보좌에서 제사장이 될 것이며 2. 그는 여호와의 전을 지을 것이요 3. 그는 엄위로 옷 입으실 것이며 그의 보좌에 앉아 다스리실 것이다 4. 먼데 있는 자들(이방인)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이 신약에서 대제사장이시요 왕으로 묘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리고 13절의 두 사이에 조화도 메시아의 제사장과 왕 두 직위 사이에 완전한 조화와 일치된다.4) 마지막으로 여기 6:12의 말씀은 여호수아에게 한 말이지 여호수아에 대해서 한 말은 아니다.5) 또 스룹바벨이란 말이 아카디아어(Akkadian)로 바벨론의 순이란 뜻이요 그가 다윗의 후손으로 왕 같은 역할을 하기는 했으나 그의 영광 면에서는 다윗이나 솔로몬에 훨씬 미치지 못했고 더더구나 그는 제사장은 아니었다. 스룹바벨은 그의 곳에서 돋아나서 란 말과도 일치하지 않는데 그 말의 문자적인 뜻은 아래 있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의 겸손하고 보잘것없는 가문을 가리킨다. 또 그 사람이란 말도 요한복음 19:5에서 예수님을 심문하던 빌라도가 한 말 이 사람이란 말과 일치하며 이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깊은 진리를 내포한다. 따라서 본문을 포함해서 예언서들은 왕과 제사장적 통치가 하나로 겸직될 때를 바라보았다.6) 다윗의 보좌는 비어 있었다. 다윗의 상속자 스룹바벨은 사라졌다. 순을 다루고 있는 야외의 말씀의 그 부분은 새로운 성취를 기다리고 있다(Beuken).7) 물론 쿰란파(Qumran)에서는 왕과 제사장직의 겸직이 이스라엘 안에서 정상적으로는 불가능하므로 대제사장적 메시아와 다윗 계통의 메시아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두 직의 분리 기능이 메시아의 한 인격 안에서 통합될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참고, 시 110; 히 7)
따라서 이 본문은 스룹바벨에게서 성취되지 않았고 이제 메시아가 오심으로만 성취될 것이므로 전통적인 메시아의 구절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주 1. Beacon Bible Commentary, Vol.5(Kansas City: Beacon, 1966), p.371 2. David L. Petersen, Haggai and Zechariah 1-8(Philadelphia: Westminster, 1984), pp.277-278 3. The NIV Study Bible(Grand Rapids: Zondervan, 1985), p.1413 4. Walter C. Kaiser, Jr.,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IVP, 1988), p.239 5. The Broadman Bible Commentary, Vol.7(Nashville: Brodman, 1972), p.329 6. Kenneth L. Barker, Zechariah, E.B.C. Vol.7(Grand Rapids: Zondervan, 1985), pp.39-40 7. Ralph L. Smith, Micah-Malachi(Waco: Word, 1985),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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