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아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습 1:1)

보수적인 학자들은 스바냐서가 선지자 스바냐에 의해 쓰여진 한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근래의 연구는 이 책이 실제로는 두 다른 메시지를 담은 두 책이었는데 마치 하나였던 것처럼 한데 묶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의  서두는 두려움과 다가올 심판에 대한 메시지이다.  압도적인 주제는 신속하게 다가오고 있는 여호와의 날의 멸망에 대한 황폐와 파괴이다(1:7, 8, 10, 14-15 등).  그러나 제3장의 8-13절은 전체로서 이 책의 주제와 완전히 조화되지 않는 것처럼 보여지는 소망의 메시지를 소개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이 책이 스바냐 한 사람의 유일한 작품으로 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먼저 본서가 한 저자 스바냐의 작품이 아니라는 이론들을 살펴보고 메시지의 내용과 본서의 통일성에 대해 알아보자.  
  
본서가 스바냐의 저작이 아니라는 견해는 일반적으로 본서가 한 저자의 작품이 아님은 물론 후대의 저작이라고 주장한다.  스바냐는 요시아 시대에 예언하였다(640-609  B.C.).   그런데 문제는 요시아때에 스바냐가 활동했다면 그것이 주전 621년 개혁 이전이냐 그 이후냐는 것이다.
  
하얏(J.P. Hyatt)과 윌리암스(D.L. Williams)는 스바냐의 사역은 전혀 요시아 시대가 아니라 그 후계자여호야김 시대였다고 주장한다.(609-597).  더나가서 스미스(Louise P. Smith)와 라크만(E.R. Lacheman)은 이 책이 마지막으로 작성된 것은 주전 200년으로까지 후대로 보며 1:4-13만이 믿을만한 스바냐의 메시지라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스바냐의 사역이 주전621년 요시야의 개혁 이전 시대였음을 선호한다.  그 이유로는 스바냐가 바알 숭배나 므낫세 시대에 성했던 어린아이 희생의 혼합적인 습관을 공격하기 때문이다(1:4-9,11-12; 3:1-4).  따라서 그가 개혁에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바알의 남은 자(1:4)란 본문은 그 개혁이 실패했고 바알의 남은 자들이 저항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반대하는 학자도 있다.

어떤 학자들은 스바냐가 630년과 625년 사이에 팔레스틴에 대한 스키치아(Scythin)사람들의 침공에 대한 언급을 하는지로 문제를 삼기도 하는데 이는 헤로도터스(Herodotus 1.103-6)의 인용에 기초한 것이나 아주 불확실하다.
  
카퍼루드(Kaperlrud)는 전통적으로 초기 저작설을 지원하는데 니느웨에 대한 언급(2:13-15)은 아직 그 성이 멸망되기 전이었다.  니느웨는 주전 612년에 멸망했다.  또 1:4-5에 반영된 혼합적인 예배는 모압과 암몬 그리고 불레셋의 도시들에 대한 언급처럼 개혁 이전 시대를 가리킨다.  따라서 모든 특성들을 감안해 볼때 스바냐는 주전 635년이나 주전 625년 사이에 예루살렘에서 예언한 것으로 결론짓는 것이 합당한 것처럼 보인다(1).
  
이제 본서의 메시지를 들어 본서의 통일성을 반대하는 주장에 대답해 보자.
위에서 조금 언급되었듯이 본서의 메시지는 크게 심판과 구원으로 되어 있다.

본서는 여호와의 날이 그 메시지의 초점이다.  어느 선지자보다 그는 그날이 임박했다고 언급한다(1:7, 14).  그 날은 진노의 날이요 고통과 멸망의 날이며 어두움과 구름과 전쟁의 날이라고 말씀한다(1:15-16).  그 날은 멸망의 날이다.  그것은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했기 때문이다(1:17).  그러나 역시 여호와를 찾는 자들은 구원의 소망이 있다(2:3).  이것은 스바냐만 아니라 다른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스바냐서는 선지자들의 개요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그의 앞선 선지자들의 것과 주제나 그 표현에서 서로 연관이 있다.  다른 선지자들처럼 심판과 구원을 반복해서 요약해 주고 있는 셈이다(2).
  
그러므로 심판과 구원 절망과 소망이 교차되는 메시지는 한 선지자의 글일 수가 없다는 이론은 선지서의 특성에 결코 맞지 않는 주장이다.
  
여호와의 날은 죄의 정화의 날이요 남은 자의 구원의 날이나 심판 가운데서 구원의 소망은(2:1-3; 3:8-9) 분명하게 이 정화의 심판이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을 위한 길을 예비하리라는 점을 지적해 주고 있다.  따라서 본서는 한 저자 스바냐의 작품이다(3).
  
역시 본서의 논리적 통일성이 그 내용에서 보여지고 있는데  심판(1:2-6)은 선지자로 하여금 야웨의 날은 그것의 양상에서 심판과 구원으로 묘사되는 궁극적 심판을 생각하도록 이끌어 준다(1:7-3:20).  `그 날은 언약의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을 수반하나 역시(1:8-3:8)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소망도 수반한다(3:9-20).    문자적 장르도 심판의 말씀(1:2-3,4-6,8-9 등) 회개의 부름(1:7; 2:1-3; 3:8) -  찬양의 부름과 찬양의 시를 포함함 - 구원의 말씀도 (3:9-13.18-20) 포함되어 사용되었다. 특별히 기쁨의 시에서 보여지듯이 각 구성 단위들은 내적인 완전을 입증한다(4).
  
그러므로 스바냐서는 두개의 다른 메시지를 한데 모은 두 책이 아니라 단일 저자의 단 권의 책임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주
     1. Ralph L. Smith, Micah - Malach(Waco: Word, 1984), pp.121-122
     2. Larry Walker, Zephaniah, E.B.C. Vol.7(Grand Rapids: Zondervan, 1985), p.539
     3.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317
     4. David W. Baker, Nahum, Habakkuk, Zephaniah(Downers Grove: IVP, 1988), p.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