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vSuh |
2014-08-25 14:34:25, 조회 : 3,014, 추천 : 6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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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삼하 18:19-30)(10/3/04)
오늘 우리 시대를 정보화 시대라고 부른다. 과연 오늘은 지식의 홍수시대다. 그러다보니 짧은 시간에 많은 소식이 신속하게 전달된다. 소식은 신문을 통해서나 라디오와 TV방송을 통해서 근래에는 컴퓨터의 인터넷을 통해서 전화나 e.mail을 통해서.... 꼬리를 문다. 어떤 소식들인가? 미국소식으로는 태풍소식, 대통령 두 후보의 정책 대결한 소식, 이락전쟁소식, 사고, 지진, 화산, 범죄소식, 한국에서도 진보보수의 싸움에 대한 소식.... 크고 굵직한 소식은 모두 좋은 소식이 아니라 좋지 않은 소식이다. 그런데 그 소식전하기 위해 사건현장으로 달려간다. 애쓴다. 돈도 쓴다. 어느 경우 생명을 잃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신자도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정말 감사한 것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은 아버지 다윗을 배반한 압살롬의 군대와 다윗 왕을 지지하는 군대와의 대결상이다. 다윗 왕은 백성을 셋으로 나누어 요압과 아비새 그리고 잇대에게 맡겨 반란군과 싸우게 했다. 그가 친히 나가 싸우려했으나 앞서 아히도벨의 모략도 있고 해서 백성들이 말리므로 전쟁에 나갈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세 장수에게 아들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접해 달라고 부탁했다. 전쟁은 예상을 뒤엎고 압살롬의 군대가 대패했다. 2만 명이 죽었다. 그리고 그 보다 더 많은 수의 군사가 산림의 수풀에 걸려 죽었다. 그리고 반란의 주모자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싸우다가 상수리나무 아래로 지날 때 그의 머리털이 나무에 걸려 공중에 매달렸고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가 버렸다.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매달린 것을 요압에게 알리니 요압이 손에 작은 창 세 개를 가지고 가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요압의 병기 맡은 소년 열 명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 죽였다. 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로 싸움을 그치게 하였다. 반란의 주모자가 죽었고 반란은 진압되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 승전의 소식을 왕에게 알려야 했다. 그때 제사장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그 소식을 다윗 왕에게 알린다. 그러면 아히마아스는 어떻게 그 소식을 전하게 되었는가? 그는 어떻게 그 소식을 전했나? 전도자로서 우리는 그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그 전쟁의 총사령관은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이었다. 반역자 압살롬을 죽인 자도 요압이었다. 전쟁을 그치게 한 이도 요압이었다. 따라서 아히마아스가 요압 장군에게 나로 빨리 왕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를 갚아주신 소식을 전하게 해 달라고 청한다. 당연했다. 여기 아히마아스는 17장에서 압살롬의 반란 때 다윗으로 안전하게 도피하도록 메센저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왕에게 피란처에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환영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겠다 했다. 그러나 요압 장군은 그가 소식전하는 자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대신 구스 사람에게 네가 본 것을 가서 왕께 전하라고 한다. 그가 요압의 명을 받고 소식을 전하려 왕에게 달려간다. 그럼에도 아히마아스는 구스 사람의 뒤를 따라 소식을 전하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마침내 허락을 받았다. 그의 뒤를 따라 왕에게 소식을 전한다. 아히마아스가 전도자가 되려는 우리에게 가르치는 진리가 무엇인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전도자는 자발적이어야 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원해서 해야 한다. 왜요? 누군가가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전도는 지속이 힘들고 효과적일수가 없다. 왤까요? 전도는 쉽지 않다. 여러분 중에 한두 번 전도 안해 본 분은 없을 것이다. 몇 사람이나 전도하셨나? 성공했나? 고구마 전도를 쓴 김기동씨에 의하면 불신자는 생고구마 같아서 젓가락으로 찔러도 들어가지를 않는다. 자주 만나서 계속 찔려야 구멍이 생기고 빨리 익어 전도가 된다고 한다. 그것은 그의 전도를 통한 경험이었다. 어느 분의 전도 경험이다. 그는 믿기 전에 그에게 전도하러 오는 사람을 만나면 재수가 없다며 소금을 뿌리며 반대했단다. 그런 핍박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 너무 주님과 전도자에게 죄스럽고 은혜 구원에 감격한 나머지 누가 시키지 않는데 직장에 갔다 시간이 나면 자원해서 이웃집을 다니며 전도했다. 어느 집 벨을 눌렀다. 주인이 나오니까 예수 믿고 복받으세요. 구원받으세요! 그랬더니 눈살을 찌푸리더니 재수가 없다며 문을 탕하고 닫고 들어갔다. 문을 닫고 들어가는 이의 모습이 옛날에 자기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런 분에게 전도할 사람은 자기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둔다면 나 같은 사람이 어찌 구원받겠나? 부끄럼과 창피를 무릅쓰고 문고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리고 울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이 분의 영혼이 과거 저와 같습니다. 불쌍히 여기시어 구원받게 하소서! 떠날 줄 모르고 울며 기도한다. 문을 쾅 닫고 들어간 집 주인은 웬만한 사람 같으면 뒤도 안 돌아 보고 떠났을 텐데 왜 저리 울며 나를 구원시켜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할까? 거기 감동된 그 주인이 예수를 영접했다고 한다. 전도자는 자발적이어야 한다. 자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히마아스처럼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자원하는 전도자! 물러서지 않는 전도자를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신다. 여러분! 마지못해서 한두 번 전도해 보셨나? 물러서지 않는 자원 전도자가 되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한 영혼을 꼭 구원하시기 바란다. 요압 장군이 아히마아스가 승전 소식을 다윗 왕에게 전하려할 때 안 된다고 했다. 안 된다고 한 이유는 그의 능력을 의심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히마아스 자신을 위해서였다. 그가 왕의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은 그에게 기쁜 소식이 아니었다. 다윗 왕은 전쟁으로 나가는 세 장수에게 내 아들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해 주시오! 전쟁에서 승리하고 내 아들이 잡힌대도 나를 생각해서 죽이지는 마시오! 요압은 왕의 그 당부가 귓전을 맴돌고 있었다. 그래 아히마아스에게 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지 말라. 왕의 아들이 죽었나니 네가 소식을 전하지 못하리라고 말렸다. 그리고 구스 사람에게 그 일을 대신 시켰다. 그런데 아히마아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구스인의 뒤를 따라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요압은 이 소식으로는 네가 상을 얻지 못한다. 그래도 아무쪼록 달음질하겠습니다. 끝내 허락을 받아낸다. 여기서 전도자가 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전도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듣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지 못할 수 있다. 우리의 전도는 반대를 받을 수 있다. 장애가 있다. 아히마아스에게는 소식을 전하지 못하게 한 요압 장군이 장애였다. 요압이 안 된다. 다음에 전하라. 왕에게 그 소식을 전한대도 상은 없다. 칭찬은 없다. 오히려 왕이 슬픔에 빠질 것이다. 그렇다. 전도하는데 장애가 많다. 전도자가 되는데 장애가 있고 전도하는데 장애가 있다. 전도자는 장애를 예상해야 한다. 장애 앞에서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이겨야 한다. 평양 장대현교회 안봉주 목사가 장로 시절 심방 대원을 인솔하고 심방하던 중에 삿전골에 들어서서 한 불신자 가정을 방문했다. 여자 교인이 먼저 들어가고 안 장로는 그 집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섰는데 욕설이 쏟아져 나오더니 난데없이 담 넘어로 뜬물이 날아와 안장로에게 쏟아졌다. 뜬물을 뒤집어썼다. 안장로는 말없이 웃으면서 그 집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가정이 되기를 빌며 대원들과 함께 그 집을 떠났다. 다음해 봄이 되어 대심방이 시작되었다. 안장로는 대원을 데리고 삿전골로 들어서서 교인들의 집을 방문하던 중 한 여자 대원이 지난해에 욕을 당한 그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때 안장로는 대원들에게 지난해 뜨물을 뒤집어썼던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여자 대원이 뒤돌아서서 그때 그 뜨물을 쏟아부은 그 사람이 바로 자기였다고 고백하였다. 전도는 장애가 많다. 사단이 어찌 가만히 있겠나? 사단이 불신자를 그의 속박에서 자유하게 하려는데 보고만 있겠나? 전도하는 것을 부끄럽게 한다. 두렵게 한다. 전도자가 되지 못하게 한다. 나중에 하지! 기회를 빼앗는다. 일이 바빠 시간을 내지 못하게 만든다. 신앙도 없으면서 믿지도 못하면서 무슨 전도야.. 해봐도 소용이 없어. 물질적인 어려움을 만나게 한다. 사도를 보라! 위협에, 체포에, 매에, 감옥에, 겹겹의 장애가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요? 그들의 전도의 길을 막는 사단보다 그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 더 크셨다. 능력과 권위가 있으셨다. 주님이 함께 하시니 사단의 장애가 두렵지 않았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전도했고 사단의 속박에 억눌렀던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았다. 이방인의 사도로 예수님을 만난 후 전 생애를 전도에 바친 바울을 보라! 고린도전서 11장에 보면 넘치는 수고, 그가 당한 장애, 반대와 핍박을 보라! 수없이 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했다. 24절에 유대인들에게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고 세 번을 태장으로 맞고 한번은 돌로 맞았다. 세 번 파선했다. 바다와 강과 광야에서 유대인, 이방인, 강도의 위험을 당했다. 수고하고 애쓰고 잠자지 못하고 굶고 춥고 헐벗었다. 그럼에도 전도했고 땅끝까지 복음을 편만케 했다. 가장 많은 장애와 가장 큰 핍박에 굴하지 않고 전도한 바울이 가장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다. 여러분! 장애 때문에 전도를 포기하셨나? 반대와 장애는 바로 전도가 성공하는 보증이다. 물러서지 말자. 반대와 그 장애에도 불구하고 전도하세요. 주님이 함께 하시고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반드시 그 영혼을 믿게 하실 것이다. 장애와 반대만큼 효과가 클 것이다. 여기 아히마아스는 요압 장군의 허락을 받은 구스사람의 뒤를 따라 승전소식을 다윗 왕에게 전하러 달려갔다.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왕이 성문의 두 문 사이에 앉아 있었다. 파숫군이 성문루에 올라가 바라보니 어떤 사람이 혼자 달려오고 있다. 파숫군이 왕이여 한 사람이 달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보고를 하고나니 다른 한 사람이 또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파숫군이 왕에게 저가 보기에는 앞선 사람이 달려오는 모습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와 같습니다. 왕이 저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하였다. 무엇을 가르치는 말씀인가? 구스 사람은 요압의 명령을 받고 소식을 전하려 달렸고 아히마아스는 뒤늦게 허락을 받고 얼마 후에 그의 뒤를 달렸다. 그런데 다윗 왕에게 먼저 당도한 사람은 아히마아스였다. 뒤에 출발했으나 앞섰다. 어떻게요? 열심이 있었다. 쉬지 않고 달렸다. 요압 장군이 구스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라고 한 것 보면 그 구스인은 젊었다. 건강했다. 잘 달리는 어쩌면 이름난 달리기 선수였을지 모른다. 그는 왕 앞에 도착할 때까지 달렸다. 그런데 뒤따라 달린 아히마아스가 먼저 다윗 왕 앞에 서서 소식을 전했다. 어떻게요? 열심, 최선을 다했다. 효과적인 전도자는 열심히 있다. 쉬지 말고 달려가는 사람이다. 수요일 전도대원들이 전도지와 설교 카셋을 들고 노방전도를 나간다. 수십 곳에 갖다 놓았던 설교 카셋 중에 남은 것을 거둬 가지고 나가 전도한다. 그때는 몇몇 중요 한인 마켓을 중심으로 전도했다. 그런데 어느 교회전도대원들은 지나치게 공격적이래요. 우리 전도대원들은 다른 교회가 전도하면 기다리고 있다가 그 교회가 다 끝나면 전도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 교회는 우리 교회가 먼저 시작을 했어도 그냥 밀고 들어와 전도하며 우리 전도지를 받고 설교 카셋을 받은 이에게도 우리 교회 전도지, 설교 카셋을 주면서 억지로라도 또 받으라고 한단다. 그것을 지켜보는 마켓 직원이나 고객들이 눈살을 찌푸린단다. 그것은 바른 방법이 아니다. 열심은 좋다. 귀하다. 그러나 예의없는 전도, 사랑없는 경쟁의 전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다. 열심이 있으면 먼저 와서 전해야 한다. 경쟁적인 전도는 전도 대상자들에게 교회마다 믿는 하나님, 예수님이 다른가 신앙을 의심갖게 만든다. 바울은 전도를 위해 생명을 걸었지만 누군가가 전도자되어 복음이 전파된 곳, 전파되는 곳에는 가지 않았다. 전도자는 사랑의 복음은 사랑으로만 전달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교회가 1차 대각성을 통해 서부 개척지에 전도가 필요했다. 그때 장로교회와 회중교회가 합동으로 전도했다. 세워진 교회는 장로교회 목사와 회중교회 목사 모두 목회할 수 있었다. 최근에 우리나라(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경쟁을 피하기 위해 평안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지역을 나 누어 전도하므로 교파간에 경쟁을 피했다. 여러분! 전도자끼리는 사랑과 양보의 미덕을 지니고 전도해야 한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소식,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 영혼 사랑의 열심히 있어야 한다. 내가 전도하지 않으면 한 영혼이 죽는다. 하나님께서는 그 영혼의 피를 내게서 찾을지도 모른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히마아스처럼 쉬지않고 달리는 열심을 낸다. 최선을 다해 달려간다. 내가 먼저 전한다는 열심히 있어야 한다. 여러분! 우리 교회 전도대원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가 이런 영혼 구원의 열정과 사랑의 열심히 충만해지시기를 바란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하나님나라 확장에 큰 도구로 쓰실 것이다. 여기 아히마아스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로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전도자로 본이 될 만하다. 그런데 효과적인 좋은 소식 전달자가 되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나? 왕에게 소식을 전하러 온 아히마아스에게 다윗 왕이 가장 궁금했던 소식을 물었다. 29절에 왕이 가로되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 아히마아스가 대답한다. 요압이 왕의 종을 보낼 때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그는 왕이 기다리는 소식이 없었다. 그러나 전할 수 없었다. 그때 30절, 왕이 무어라고 하시나? 물러나 곁에 서 있으라 하매 물러나 섰거라. 무엇이 문제였나? 열심은 있었으나 좋은 소식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없었다. 전도가 그렇다. 전도의 방법은 다양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전도의 내용이다. 복음이다. 그냥 교회에 나오세요. 교회에서 만납시다. 우리 교회는 무엇이 좋습니다. 우리 교회에 부흥회가 있습니다. 이런저런 메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전도는 다 간접 전도다. 이는 아히마아스의 소식 전달과 같은 것이다.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으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전도의 핵심은 복음이다. 불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구주다.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 어떤 예수인가? 내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의롭게 하시기 위해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 그 예수를 믿으면 예수와 연합되어 다시 살고 다시 살면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사는 영생의 복음이 있어야 한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바로 복음,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증인이었다. 여기 아히마아스는 현장을 보고 압살롬이 죽은 것을 확인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어쩌면 그도 압살롬이 죽은 사실만큼은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압 장군의 말대로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은 왕을 기쁘게 할 수 없고 그 일로 칭찬이나 상이 없을 것을 우려해서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는 왕에게 그 말을 못했을 수도 있다. 침묵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왕이 기다리고 알고 싶어하는 소식을 그는 전해주지 못했다. 왕은 그의 말을 더 이상 들으려하지 않았다. 너는 물러가 곁에 섰으라! 그리고 구스 사람에게서 소식을 들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전도에는 반드시 복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종종 전도를 받는 사람이 다윗 왕이 압살롬이 죽었다는 말을 듣는 것처럼 예수를 믿으라,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면 듣지 않으리라, 기뻐하지 않으리라, 그래 예수를 전하는 것을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수를 분명히 전할 때 예수의 영이신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예수에 대해서 들을 때 신앙이 생긴다. 전도자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1912년 2월15일부터 22일까지 한주간 경북금중군남면 신전동교회에서 사경회가 열렸다. 이때 선생으로 온 강사는 경상도 사들교회의 정씨부인과 금릉군 송내교회에 있는 임씨 부인인 두 분이었다. 한 주간 말씀을 가르쳤는데 큰 은혜를 받았다. 전도한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이 교회 형편을 살피니 남교우가 여교우의 두배가 되니 우리 한번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인류의 첫사람을 내실 때 남자 둘에 여자 하나를 만드셨습니까? 아닙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지으셨는데 어찌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구풍으로 여필종부라 했는데 무슨 이유로 남편은 주일날 예배드리러 가고 여자는 집에 그냥 있습니까? 참으로 답답합니다. 참 원통합니다. 잠언에 이르기를 고운 것도 거짓이요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는다 하였으니 부디 헛된 것을 숭상치 말고 예수 믿고 만복의 하나님을 경외합시다. 그 전도로 은혜받은 여성도들이 분발하여 전도함으로 여교우의 수가 점차 많아져 남교우 수와 같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 전도자들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문제를 지적했다.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였다. 예수를 전하니 믿는 여자의 수가 배가 되었다. 여러분! 전도자입니까? 자원전도자인가? 장애에도 전도하시나? 열심히 하시나? 그 영혼에 필요한 구주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를 전하시나? 나의 전도에 예수님이 동행하시고 성령님이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믿음으로 힘있게 좋은 소식을 계속 전하시므로 이 가을에 한 영혼 구원의 추수를 하시기를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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