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
  본문 : 삼하 21:15-22
RevSuh  2014-11-24 15:21:59, 조회 : 2,889, 추천 : 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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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삼하 21:15-22)(111404)

  이민자의 직업은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의 직업을 따른다고 한다. 이상하게 들리는 말이기는 하지만 사실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목사야! 이민을 오기 전에나 이민을 와서나 목사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소명을 어찌 환경을 탓으로 바꿀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언어나 문화만 아니라 생활환경과 생업의 여건이 크게 다르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직업을 미국에서도 지속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러다 보니 모두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이민자의 삶이다. 따라서 공항에 마중 나온 가장 가깝고 나를 잘 아는 이민 선배, 친척이나 친구의 직업을 보고 배우고 소개받고 따르게 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생업의 과정이 어찌 쉽겠나? 그래 이민자의 삶은 선구자가 아니여도 쉽지가 않다. 생소한 일을 한다. 건강을 해치기도 하고 안해 본 사업을 했다가 실패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스트레스로 빗나가 친구를 잘못 사귀어 낭패를 보기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지진이나 화재, 홍수 같은 재난을 당하기도 한다. 열심히 사업을 하는데 난데없이 권총 강도가 나타나 총격을 받기도 한다. 전혀 기대 못했던 폭동도 일어난다. 정말 예측불허의 삶이 우리 이민자의 삶이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됐을 때 이스라엘의 가장 큰 적이요 이스라엘을 크게 괴롭혔던 불레셋의 예측불허의 공경을 받고 힘겨운 싸움을 했던 다윗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지를 말씀해 준다. 이는 마치도 오늘 우리 이민자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러면 다윗은 전쟁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는가?
15절을 보시라. 불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다윗이 그 신복들과 함께 내려가서 불레셋 사람과 싸우더니 다윗이 피곤하매 하였다. 전쟁 중에 힘이 다 빠지고 기진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피곤하고 기진맥진한 상태의 다윗 - 불레셋 원수에게 둘러싸여 위기를 맞게 된 다윗의 형편, 무엇을 말해 주나?
이것은 지금 이민자의 삶을 말해주고 있다. 사업이 잘 안 된다. 다른 사업을 해 볼까? 그러나 여의치가 않다. 시작했다가 또 안되어 실패에 또 실패를 거듭하게 되니 삶의 의욕을 잃었다. 사업이 아주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애쓰고 해봐야 남는 것은 없다. 언제까지나 이 사업을 지속해야 하나? 의문이 생긴다. 사업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렌트비가 너무 비싸다. 다른 곳으로 사업체를 옮겨야겠다. 그런데 사업체가 안 팔린다. 답답하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몇 년 애써 집을 사려는데 안 된다. 아이들도 키워야 하고 좀 학군이 나은 지역으로 가야 하는데 타주로 이사를 가야 하나? 고민이다. 아이들 때문에 걱정이다. 사춘기다. 말을 안 듣는다. 학교에 안 간다. 집을 나간다. 나쁜 아이들과 나돈다. 타이르고 달래고 위협도 해 보지만 뜻대로 안 된다. 지쳤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누구에게나 지니고 사는 것 그 영주권이 없다. 그래 직장을 갖기가 힘들다. 불법체류자가 된다. 언제나 합법적인 신분이 주어질까? 기다린다. 지쳤다.
오늘 우리의 형편이 전쟁에 지치고 지친 다윗과 같지 않은가? 그런데 보세요! 사실 다윗은 우리보다 더 심각했다. 전쟁 중에 극도로 피곤했다. 더 이상 싸울 힘이 없다. 그런데 또 16절을 보세요. 장대한 자의 아들 중 삼백 세겔  중 되는 놋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했다. 이제는 죽은 목숨이었다. 골리앗과 비길 정도의 큰 창을 들고 새 칼을 찼다. 새 무기를 갖춘 장수가 다윗과 맞섰다. 꼼짝없이 죽었다. 정말 위기였다. 그런데 17절에 어찌 되었나? 스리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불레셋 사람을 쳐 죽이니...생명을 빼앗길 위기에서 아비새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구원받았다. 예기치 못했던 일이다. 불레셋의 큰 장수의 손에서 벗어난 다윗!!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물론 아비새는 믿을만한 장수구나! 그래 고맙구나! 그러나 극도로 피곤해서 몸도 가누기 힘들 때 불레셋의 큰 장수가 창을 들고 공격해 왔을 때는 절망했을 것이다. 그러니 큰 깨달음을 가졌으리라. 하나님! 살아 계신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신앙으로 소망을 갖지 못했던 자신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이 그 어떤 위기에서도 생명을 지켜 주신다. 낙망하지 말라. 소망을 갖자고 다짐했을 것이다.
여러분! 다윗만 위기에서 낙심되는 형편에서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때 광야에서 200만 명이나 되는 백성들이 이웃과 담도 없이 서로 천막의 문 하나를 곁에 두고 살았을 때 얼마나 문제가 많이 발생했겠나? 모세는 시비와 다툼의 혼란 속에서 질서를 지켜야 했다. 그 많은 백성들을 공정한 판결로 분쟁을 잠재워야 했다. 모세가 어찌 했나? 하루 종일 재판자리에 앉아 있었다. 백성은 재판을 기다리느라 종일 서 있었다. 모세도 백성도 모두 기진맥진하게 되었다. 피곤하게 되었고 매우 지쳐 있었다. 특별히 모세는 더 이상 그 백성을 이끌 의욕을 잃었다. 그때 장인 이드로가 왔다. 모세에게 지혜를 가르쳤다. 큰 일만 모세로 판단케 하고 적은 문제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두어 백성을 재판케 하셨다(호 18:21- ).
선지자 엘리야의 경험도 다르지 않다. 열왕기상 19장 “그가 가멜산상에서 우상숭배자 바알과 아세라 선지 850명과 싸워 당당히 이기고 그들을 다 처치하지 않았나? 3년 6개월 가문 땅에 폭우가 쏟아지게 하지 않았나? 그만한 영적인 거인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 그 일로 바알과 아세라 숭배의 대모격인 왕후 이세벨이 그를 죽이려 하니 두려워서 살기 위해 도망쳐 브엘세바의 광야로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 앉아 하나님께 그를 죽여주시기를 구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저만 남았습니다. 어디가면 이세벨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겠나? 도망다니며 숨어살기가 너무 힘들고 안전한 곳은 없고 두렵기만 하니 죽고 싶습니다. 죽으려고 드러누웠다. 먹을 것도 없고 누워있으면 들짐승에게 먹히고 말 것이다. 그런데 그때 천사가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고 한다. 일어나 보니 떡과 물 한 병이 놓여 있다. 그 떡을 먹고 물을 마시고 힘을 얻어 40주야를 달려 호렙산으로 가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 사명을 주시고 감당케 하셨다.
여러분! 다윗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아비새가 적장을 처 죽이므로 살아나지 않았나? 누가 그 순간에 아비새를 보냈나? 하나님이셨다. 모세도 백성도 모두 지쳤다. 모세는 더 이상 백성을 이끌 힘이 없을 때 이드로를 보내신 이가 누군가? 하나님이 아니신가? 엘리야가 죽기를 구할 때 천사를 보내 살린 이가 누군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성도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신다. 성도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어려움에 처해 낙심될 때 사면초과가 되었을 때 결코 모른 체 하지 않으신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시다. 병들었을 때 사업이 안 될 때, 사업에 실패했을 때, 직장을 잃었을 때, 내 자녀가 말썽을 피울 때, 신분 문제로 고민할 때 하나님은 아신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려 하신다. 누군가를 보내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시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소망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신다.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닥터가 한 분 있다. 두 가지 암과 투병하며 싸워 이긴 어느 의사의 고백이다. 어떻게 하나도 아닌 두 가지나 되는 암과 싸워 이길 수 있었을까? 약이 아니었다. 운동도 아니었다. 소망이었다. 그분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희망을 지녔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희망이 암에서 그를 구원했다.
여러분! 열악한 환경이나 역경으로 낙심되시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란다. 다윗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도 도와 주실 것이다. 여러분의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용기를 내세요. 다윗을 죽음에서 구하고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끈 다윗 왕의 신복들은 누군가? 적장이 창으로 다윗을 죽이려 했을 때 적장을 처 죽이고 다윗을 구원한 이는 아비새다. 그 아비새는 누군가? 그는 다윗의 누이 수루야의 아들이다. 물론 용기가 있고 다윗에게 충성되었다. 다윗을 죽이려 왔다가 피곤해 진 중에서 잠에 빠진 사울 왕을 보고 단칼에 죽이자고 권하던 자다. 압살롬과 세바의 반역때에도 다윗에게 충성했고 에돔의 군인들을 대패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다윗의 신복 중에 제1급의 장수에는 들지 못했다. 2급에 속하는 장수였다. 후사 사람 십브개가 장대한 자의 아들 삼을 처 죽였고 엘하난이 골리앗의 아후 라흐미를 죽였다. 또 손가락, 발가락이 하나씩 더 있는 기형의 거인을 요나단이 죽였다. 적의 큰 장수들을 처서 죽인 이 다윗의 신복들은 누구였나? 모두 제일 큰 장수들이 아니었다. 2급이요 3급 정도다. 전쟁 중에 다윗이 극도로 피곤했다면 그 신복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윗은 원래가 무사요 용사가 아니었나? 적이 강했다. 싸움은 힘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겼나? 적장만 못한데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나? 저들은 모두 약한 줄을 알았다. 적은 강했다. 싸움이 힘들 것을 알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다. 그런 믿음이 있었다. 따라서 그 하나님이 저들을 보고 계심을 깨달았다. 다윗과 그의 신복들에게는 허다한 백성들이 그들을 지켜보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보시고 백성들이 지켜보는데 주저앉을 수가 없었고 지치고 힘들어도 전쟁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인내해야 한다. 히브리서 12장에 나오는 말씀대로 세상에서의 우리 신앙인의 삶은 인내의 경주와도 같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많은 앞서간 성도들이 인내의 경주를 달려간 승리한 성도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그렇다. 하나님이 다윗을 지켜보고 하나님이 다윗의 신복을 지켜보고 그들이 승리하기를 위해서 하나님앞에 기도하는 많은 백성들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인내했다.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 하신다. 저들을 들어 쓰시니까 강한 자를 굴복시킬 수 있었다.
사무엘상 13:31에 다윗과 골리앗과의 싸움의 기록도 같은 진리를 가르친다. 다윗에게 골리앗은 싸움의 상대가 아니다. 다윗은 그의 형들도 알았다시피 어린 소년이었다. 군대에 나갈 나이도 아니었다. 골리앗은 불레셋의 거인 장수로 이스라엘과 불레셋이 전쟁을 위해 대치했을 때 40일 동안을 아침저녁으로 나타나 그의 거구와 그가 지닌 큰 창과 칼을 보이며 이스라엘 군인들을 위협했다. 그를 본 이스라엘 군인들은 너무 두려워 도망가 숨기에 바빴다. 골리앗을 보기만 해도 이스라엘 군대는 힘이 빠졌다. 바빴다. 오죽 했으면 사울 왕이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는 그의 딸을 주어 왕의 사위를 삼고 많은 재물을 주고 그 아비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자유케 하겠다, 세금을 내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겠나? 그런데요? 누구도 싸우겠다고 너선 군인이 없었다. 그런데 다윗이 내가 싸우겠다고 나섰다. 왕이 다윗을 보고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다른 길이 없지 않았나? 그래 사울 왕이 칼과 군복을 주었으나 모두 어색했고 자유롭지가 못했다. 그는 손에 막대기와 물매를 들고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주워 골리앗과 싸우러 나갔다. 이스라엘은 왕도 군인도 군인이었던 다윗의 형들도 누구도 다윗이 이길 것이라고 기대하지 못했다. 그러니 골리앗이 다윗을 보자 기가 찼다. 이스라엘 전체를 한심하게 봤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왔느냐? 다윗은 그렇게 작았다. 약했다. 무기도 없었다. 그가 가진 것은 조약돌 다섯 개가 전부였다. 그와 싸울 골리앗은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더구나 그의 앞에서는 큰 방패를 든 자가 그의 몸을 가리우고 막아 주고 있었다. 물매를 던져도 맞을 곳이 없었다. 그런데 다윗의 물맷돌 하나가 날아가 골리앗의 이마를 맞췄다. 어떻게 수백분의 일도 안 되는 이마 한 가운데, 투구를 쓰고 남은 부분, 방패로 가리고 남은 부분 그 곳을 정통으로 맞출 수 있었겠나? 그것도 아예 이마에 돌이 박혀 버렸다. 거구 골리앗이 쓰러졌다. 어떻게요?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않으니라. 전쟁은 여호와께 있다. 물매와 막대기와 조약돌을 믿고 싸운 것이 아니다. 나는 약하고 내게 있는 것은 보잘 것 없다. 그러나 내가 믿는 하나님은 크시고 강하시다. 이 전쟁은 불레셋과 이스라엘의 싸움이 아니다. 하나님을 모욕하고 욕되게 하는 우상숭배자 불레셋과 하나님과의 싸움이다. 골리앗과 다윗이 아니라 골리앗과 하나님과의 싸움이다. 그 신앙에 선 그는 그 하나님 이름으로 하나님과 함께 나간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나는 약하고 내게 있는 것은 보잘 것 없을지라도 이길 수 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들어 쓰셨다. 하나님이 쓰시니 군인이 아닌 소년이 단창이나 칼이 아닌 보잘 것 없는 조약돌이 큰 장수를 이기고 칼과 단창을 꺾었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쓰러졌다. 칼과 단창이 조약돌 한 개에 무너지고 말았다.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었다.
찰스 엘리어트라는 분이 보스턴의 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나면서부터 얼굴에 큰 흉터가 있어서 그것이 큰 수치와 부담이 되었다. 청년이 된 그는 의사를 찾아가 그 흉터를 제거할 수 있는지 상담하였다. 그러나 진단결과는 불가능이라는 판정이었다. 그는 암담했고 낙심되었다. 그때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이런 조언을 해 주었다. 챨스야, 네 얼굴에 그 흉터는 지워버리지 못할 꺼야.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너는 마음과 인격이 큰 사람이 되면 사람들은 너를 볼 때 네 얼굴에서 흉터를 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는 어머니의 믿음과 지혜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마음과 인격을 믿음으로 다듬어 사람들이 그의 흉터를 볼 수 없는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었다. 그때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들어 쓰셨다. 그는 하바드대의 유명한 총장으로 교육제도의 개선과 미국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는 하버드 대 교수, MIT 교수를 역임하고 35세에서 75세까지 무려 40년을 하버드 대학교를 지휘하는 총장으로 세계 최고의 명문 대학으로 이끌 수 있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환경과 형편이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낙담시킨다고 해도 우리를 위협하는 세력이 사방으로 우겨쌈으로 답답할지라도 내가 안고 있는 약점 때문에 나는 약하다고 또 내게 있는 것은 보잘 것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그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대적하면 기도하며 인내하며 기다리면 하나님은 반드시 연약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를 들어 쓰시어 우리를 위협하는 거대한 세력을 이기게 하신다. 그것이 질병이든 그것이 불경기이든, 그것이 자녀들의 탈선이든, 그것이 신분상의 문제이든, 하나님이 도우시면 이길 것이다. 해결될 것이다. 우리에게 있는 것이 적다고 보잘 것 없다고 낙심 말라. 다윗을 보라. 칼과 단창으로 그를 공격하는 적을 물매와 물맷돌로 대항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기고 그 보잘 것 없는 4개가 남지 않았나? 하나님이 쓰시면 적은 것으로도 이길 수 있다. 모자라지 않고 남을 수 있다. 모세를 보라. 그에게 있는 것이 무엇이었나? 마른 막대기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쓰시니 그 막대기가 애굽의 강퍅한 바로를 꺾고 홍해를 가르는 큰 역사를 일으켰다. 바로의 병거와 그의 강한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킬 수 있었다. 위기에서 구원받고 싸워 이겼다.  
나비를 좋아하는 사람이 채집을 좋아했고 또 나비가 태어나 날아가기 전 고치에 관심이 컸다. 어느 날 공원 오솔길 나뭇가지에 달린 고치를 따서 조심스럽게 손수건에 싼 다음 집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흙항아리 속에 넣고 눈에 잘 띄는 곳에 두었다. 그 고치가 처음에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움직였다. 고치가 꿈틀거리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고치의 몸부림이 격렬해졌다. 그는 이러다가는 고치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고치의 측면을 날카로운 칼로 아주 조심스럽게 조금 칼집을 내줬다. 그와 동시에 날개 한쪽이 나타났고 다른 쪽도 뻗어 나왔다. 자유롭게 된 것이다. 고치를 뚫고 나온 나비는 항아리 주위를 걸어다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날지를 못했다. 젖은 날개 탓이려니 했으나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날지 않았다. 이웃집에 고등학교 과학 선생님이 계셨다. 어떻게 고치를 흙항아리에 넣어 두었는지, 얼마나 시간이 흘러서 고치가 움직이고 몸을 걸었는지, 그리고 나서 고치 옆에 작은 칼집을 내 준 것을 이야기하자 그가 거기서 말을 막았다. 아 그래서 그래요. 나비는 그 분투를 통해서 날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거든요.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신자에게 왜 하나님께서 어려움과 역경을 허락하시는 이유이다. 그러니 여러분! 역경 앞에서 오늘의 어려움 앞에서 낙심하지 마세요. 소망을 가지세요.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구원하신다. 성도들이 기도하고 지켜보고 있다. 참고 대적하세요. 하나님이 도우신다. 쓰신다. 약하고 가진 것 없어도 이 믿음으로 승리케 하시고 꼭 승리하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여러분을 도우시며 지켜보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며 지켜보고 있는 다른 성도들에게 기쁨을,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는 불신자들에게 하나님 살아계심을 보여 주시므로 믿음의 문을 여시고 그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승리자가 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