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vSuh |
2014-12-08 21:34:37, 조회 : 2,900, 추천 : 5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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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하나님(삼하 22:29-36)(12/05/04)
참 신앙은 하나님이 누구이시고 어떤 분이심을 바로 알고 믿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길은 성경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자신을 계시해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배우면서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을 더 알아가게 된다. 그런데 성경의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성경의 하나님, 내가 아는 하나님으로 경험되어져야 한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사울 왕과 그의 모든 원수에게서 구원받은 후 하나님을 찬양한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다윗의 경험적인 하나님 신앙이다. 그렇다면 다윗의 신앙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지닐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다윗이 경험적으로 안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등불이 되시는 하나님이다. 엊그제 교회에 오는 도중 뉴스를 들으니 인면수심이란 예기가 나왔다. 무슨 예기인가 했더니 어느 한인 아버지가 자신의 딸을 성폭행 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수능시험 부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서 가히 전국적임이 드러났다. 어느 장로님이 이런 얘기를 하신다. 자동차를 길가에 세워 놓았는데 누군가가 타이어를 빼어 가버렸다. 그래 스피어타이어를 갈아 끼우는데 누군가가 다른 쪽에서 타이어를 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가 막혔다. 그래 당신 거기서 뭐하고 있느냐? 물었더니 그가 너는 뭘 하고 있느냐? 그래 이거 내 차다. 그랬더니 그러냐? 미안하다. 심지어는 타이어를 훔쳐간 도둑이 나타나서 거기 맞는 타이어 싸게 안 사겠느냐? 고 묻는단다. 한국 정부가 계획한 개발 사업을 추진할 때 많은 업체들이 경쟁한다. 최저가를 제시한 업체가 사업을 딴다. 그것 해 보아야 별 이득이 없다. 그러니 하청업체에게 돈 받고 팔아넘긴다. 그 업체가 그 일을 정직하게 한다면 남는 게 없다. 게다가 해당 공무원이 감독한다며 나타나면 식사 대접 등으로 또 돈이 들어간다. 그러니 공사는 날림이 되고 부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가? 종교다원주의, 사이비이단, 신비주의, 자유주의, 계율주의로 참 진리에 대한 확신이 더 힘들게 되었다. 교회 안에도 교파의 특성은 찾기 힘들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그것도 바람직할지 모른다. 모든 교파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닌가?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쉽게 성경의 교리와 신앙을 깨닫고 믿기가 그만큼 더 힘들게 된 것이다. 근래에는 인간이 하나님이라는 주장을 서슴없이 하는 뉴에이지 운동과 하나님과 나는 하나라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신비주의가 크게 팽창하고 있다. 따라서 신자들이 옛날보다 성경도, 교리도, 신앙도 시대의 흐름에 대해서도 많이 안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분명히 알고 바로 믿는 이는 많지 못하다. 복음적인 신앙인 거듭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누가 이렇다면 이런가? 누가 저렇다면 저런가 한다. 내 신앙의 수준이 물론 옛날보다는 향상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설교자는 설교자대로 문제가 많다.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에 성경 본문을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듣는 이는 성경만 읽고 설교하면 성경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본문이 무엇을 말씀하던 은혜만 받으면 된다는 자세다. 설교비평도 필요하다. 최근에 기독교서회에서 한국교회 16인의 설교를 말한다는 책이 나왔다. 바람직한 일이다.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들이 많았다. 어느 목사님, 설교를 잘 하신다. 그런데 그 분이 로마서 설교에서 동성연애비판(가장 아름다운 것인데 추한 것으로 바꿔 놓은 사탄의 사역이며 하나님의 처벌이 AIDS가 아니겠는가란 구절을 들어 중세 종교 재판관 같다. 사회의 마이러니티 공격은 제국주의적인 소망의 독기다. 이런 잘못의 책임은 로마서를 쓴 바울에게도 있다. 친미 반북한 논조는 그를 분개시키며 가히 사대주의사상의 발상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빛이다. 밝은 빛이 필요하다. 성경은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했다. 요한복음 1장에서는 하나님은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 땅이 어둡고 혼돈한 때 빛을 창조하신 이가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할 때 불기둥으로 지키시고 인도하셨다. 본문 29절에서 다윗은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다윗은 어두움에 다니지 않았다. 빛되신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나님과 동행했다. 빛되신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지키시고 인도해 주셨다. 분별력을 지니고 밝게 깨끗하게 살았다. 그의 장인이요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이 그를 죽이려고 따라 다녔다. 사위다. 생명을 걸고 나라를 구한 충신이다. 그런데 도망자 신세가 됐다. 3,000명의 정예군을 이끌고 그를 잡기 위해 그가 숨어 있을만한 곳은 이를 잡듯이 뒤졌다. 그러나 그는 사울 왕을 미워하지 않았다. 무시하지 않았다. 원수 같은 사울 왕, 그러나 대면했을 때마다 나의 아버지였다. 엔게디 황무지 굴에 숨어 있을 때 그를 잡으러 왔던 사울 왕이 피곤해 굴속에 들어와 잠을 잔다. 원수를 죽일 수 있는 절호에 기회였다. 부하들이 죽이라고 난리였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하나님의 빛이 되셨다. 어두운 일을 하지 않았다. 겉옷자락만 조금 벤 것도 후회했다. 어떻게요?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 사울 왕은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였다. 하나님 신앙 때문에.... 이스라엘 왕들만 아니라 유대의 많은 왕들도 바알과 아세라, 심지어 일월성신까지 신이라고 섬겼다. 당시에는 나라마다 전쟁이 참 많다. 전쟁은 나라대 나라보다 그 나라가 믿는 신의 대결이었다. 왕들이 강한 적과 싸우면서 유혹을 받았다. 강대국이 되고 싶었다. 우상숭배에 빠졌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 된 후에는 그 어느 왕보다 더 많은 전쟁을 치렀다. 다윗은 얼마나 우상숭배의 유혹이 심했겠나? 그러나 그는 평생을 오로지 하나님만 섬겼다. 하나님은 그에게 빛이시었다. 여러분! 여러분이 오늘 믿는 하나님은 빛이신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의 빛이 여러분을 인도하시나? 다윗처럼 오늘 우리 시대의 우상 사이비이단 사람이 만든 잘못된 신상을 분별할 수 있는가? 성경의 하나님만 믿는가? 확신을 가지고 어두운 삶을 살아가지는 않는가? 요한복음 8장 12절에 빛되신 하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않는다고 하셨다. 과연 그런가? 정직하지 않고 거짓말하는 것,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남의 것 부러워하고 탐내는 것,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믿고 의지하고 따라가는 것이 모두 어두운 것이다. 빛과 상관없이 사는 것이다. 아직도 어두움에 다닌다면 회개해야 한다. 빛되신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 그리고 그 빛으로 밝게 변해야 한다. 한 중국 선교사가 중국인에게 당신은 복음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복음에 대해서 자세히 들어 본 적은 없으나 복음을 본 적은 있습니다. 나는 한 남자를 압니다. 그는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가던 테러리스트였습니다. 포악하고 사나운 사람입니다. 아편 중독자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딴 사람이 됐습니다. 온순해졌습니다. 선하게 삽니다. 아편도 안 합니다. 그가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를 믿고 예배드리는 것이 좋은 것을 알았습니다. 빛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말과 행실이 세상에 빛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생활이 복음이요 전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이시다. 최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과 이라크 전을 보면 그 승패가 화력에 달려 있었다. 이처럼 요즈음에 전쟁은 불, 화력에 달려 있다. 세계가 핵확산을 금지하려고 신경을 쓰는 것도 거기에 있다. 성경은 말세에 이 세상은 불로 심판 받을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마태복음 3:10에 예수님은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불에 던진다고 하셨다. 요한계시록 20:10에는 미혹자 마귀, 그 졸개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불과 유황 못에 던지워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당하리라고 하였다. 베드로후서 3장 7절에 이제 하늘과 땅은 불사르기 위해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자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라 하였다. 따라서 불로 심판할 세상과 있을지도 모를 엄청난 화력의 핵전쟁은 이런 연관이 있을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연계시키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옛날의 싸움은 그 무기가 칼이나 창 그렇지 않으면 활, 또는 물매 등이었기 때문에 방패가 유일한 방어 수단이요 보호 수단이었다. 유명한 불레셋의 장수 골리앗! 그의 체구만 보고도 이스라엘 군인들이 두려워 숨을 곳을 찾았다. 그러나 그도 창으로 찌르고 칼로 치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다윗의 물매 돌에 이마가 깨졌고 칼에 그의 목이 잘리지 않았는가? 다윗의 생애는 무사의 삶이었다. 왕이 되기 전만 아니고 후에도 여러 번 전쟁에 출전했다. 그때마다 위기가 없던 것은 아니다. 적에게 둘러싸여 위험한 고비가 많았다. 그러나 그가 죽지 않고 산 것은 그에게는 그를 원수의 공격에서 막아 준 방패가 있었다. 31절이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여 저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그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 주셨다. 21장에 불레셋과 싸울 때 장대한 자의 아들 중에 300 세겔 되는 놋창을 들고 쇠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했다. 피곤했던 다윗은 영락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창을 막아 줄만한 자가 없었다. 그런데 아비새로 다윗을 돕게 하셨다. 그 장수를 처 죽였다. 위기를 모면했다.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 주셨다. 사울이 악신이 들어갔고 다윗을 죽이려고 갑자기 창을 던졌다. 그런 급작스런 행동을 어떻게 피할 수 있었겠나? 가까운 거리였다.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 주셨다. 사무엘상 26장에 사울이 그를 잡으려고 정예군인들과 함께 와서 엔게디 황무지에 도착했다. 밤이 되자 사울 왕 군사들 가운데서 잠을 자고 있을 때 아비새와 그 진영에 들어간 다윗! 아비새가 잠자는 사울 왕을 보자 단번에 창으로 찔러 원수를 갚겠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다. 그렇게 하지말고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왔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사울 왕! 내가 범죄했다. 내 아들아 돌아오라. 네가 내 생명을 귀중히 여겼으니 나도 너를 해하지 않겠다. 내가 대단히 잘못했다. 내 아들아 네게 복이 있으리라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고 하였다. 여기서 무엇을 보나? 다윗의 원수를 사랑한 선행에 감동 받은 사울 왕의 모습이다. 그러나 다윗으로 원수 사울 왕을 사랑케 하신 이가 누군가? 그 모습을 보며 감동하며 뉘우치고 그가 죽이려던 다윗에게 복을 빈 사울 왕! 그렇게 감동을 받아 뉘우치게 하신 분이 누구신가? 성령님이 아니신가? 만일 사울 왕이 감동을 했다가도 돌변하여 여전히 악한 마음을 품었더라면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다윗을 3,000명의 정예군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았을 것이다. 다윗에게는 정말 더 큰 위기가 될 수 있었다. 무엇을 가리켜 주는 일련의 사건들인가? 다윗이 사울 왕에게 범죄하지 않도록 막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었다. 그를 사울의 칼에서 지켜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었다. 사울 왕을 감동케 하시고 다윗을 치지 못하게 막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었다. 방패가 되어 주신 하나님! 다윗은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 신앙, 방패되시는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며 사는 삶이었다. 오늘도 하나님은 당신을 방패로 믿는 자, 그래서 그에게 피하는 모든 자를 지켜 주신다. 보호해 주신다. 그것을 경험하며 고백하는 신앙이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다. 연말을 맞이하면서 범죄예방을 위해 경찰력을 증원시킨다고 한다. 예년보다 살인 사건등 강력범죄가 조금을 줄었단다.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예기치 못할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 내 가정에, 사업체가 표적이 될 수도 있다. 사고나 화재나 재난은 예측할 수가 없다. 경찰이 우리를 지켜주나? 정부가 지켜 주나? 내가 지킬 수 있는가? 질병은 어떤가? 누가 책임을 질 수 있나? 어느 집사님이 배가 아파서 의사를 찾아가니 진찰하더니 나는 잘 모르겠으니 L.A에 어느 외과 의사를 소개해 준다. 거기서는 무슨 일이 있으면 수술도 할 수 있단다. 진료비는 120불을 받는다. 모른다는 진료비다. 모두 병을 고치실 분은 하나님이시다. 신앙으로 기도로 내 몸의 병도 고치시는 또 질병을 막아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경험해야 한다. 성경 베드로전서 5장 8잘에 말세에 근신하고 깨라고 하신다.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으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대적하라고 하였다. 사탄과 마귀는 오늘 이단과 사이비 신앙으로 성도들을 유혹한다. 어느 큰 서점이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찾아가 보니 책들을 세일한다. 종교란에 가보니 쓸만한 책이 별로 없다. 그런데 한켠에 꽤 많은 부분이 문선명씨의 통일교 책이 있었다. 어디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다섯 가지 중에 4권을 샀다. 그런데 그 책을 쓴 사람들, 통일교 소개, 세계 가정연합소개, 통일교의 사상소개를 하는데 일본인 한사람이고 모두 미국인들이다. 얼마나 어리석길래, 아니예요. 박사에 교수들이 끼어 있었다. 모두 Princeton, Claremont, Duke, harvard, Vanderbilt, Umon, Columbia, Drew, Yale, Edinburgh의 출신 박사들이다. 내가 참부모라는데 나와 내 아내의 축복을 받아야 복을 받는 가정이 된다는데 내가 재림 예수라는데 혹시 못 배운 분들이 그저 세뇌 교육을 받고 문선명씨를 재림주로 믿고 그 사상을 책으로 펴냈다면 모르겠는데 박사란 사람들, 교수란 사람들이다. 무엇이 그리되게 했는가? 사탄의 역사다. 왜 그리됐나? 하나님 신앙이 없다.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 사탄과 마귀의 거짓된 속임수를 간파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 말씀이 없다. 그러니 사탄의 공격을 막을 재간이 없었다. 세상의 지식은 어둡다. 여러분! 하나님의 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시기 바란다. 참 길이시고 진리되시고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 우리의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신 하나님 신앙에서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세의 특징은 사랑의 부재다. 오해, 미움, 다툼, 분열이다.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국가도 다툼, 미움,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보수다 진보다. 말세다. 사단의 역사다.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사이비나 이단 사상을 분별하여 물리치는 것 중요하다. 그러나 성도간에도 끼여 들어 오해와 미움과 다툼과 분열을 일삼는 사탄의 시험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요한계시록 2장에 소개되는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주신 성령님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권면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9절에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회개하라, 그렇다. 처음 사랑, 예수를 믿고 나서 지녔던 처음 사랑, 하나님 사랑, 예수님 사랑 회복해야 한다.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 그래 외아들 예수님을 땅에 보내신 하나님! 내 죄 대신 하기 위해 십자가에(희생) 생명을 주신 예수님 사랑, 예수님의 이 사랑의 십자가 보혈로 형제자매의 사랑으로 이어가야 한다. 오해, 다툼, 소원한 관계로 지내는 이는 없는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내가 먼저 굽히고 용서하세요. 이 해가 다가기 전에 그리고 사랑으로 새해를 맞자. 하나님 믿는 신앙은 원수도 한 형제로 변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세계가 핵확산 금지에 신경을 쓰는 것은 이 지구가 핵전쟁으로 무너져 내리면 어쩌나 파괴되면 어쩌나 두렵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 지구는 하나님께서 불로 심판하실 것이다. 물론 핵 확산도 막아야 된다. 그러나 제 생각은 지구의 종말은 하나님의 불의 심판은 초자연적인 역사일 것이다. 저는 노아 홍수 후, 마지막 불의 심판의 시간 때까지 이 지구를 지켜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 따라서 세상이 지구의 반석은 미국을 비롯한 핵 보유 강대국이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유지로 하신다. 세상의 반석은 하나님이시다. 어디 지구만인가? 우리 개인도 창조주 하나님이 붙들고 계신다. 가정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교회도 하나님이 붙들고 계신다. 건강도 생명도 하나님의 손에 있다. 하나님이 놓으시면 무너진다. 국가의 운명도 그렇다. 하나님 신앙에 달렸다. 반석이신 하나님을 떠나면 흔들리고 무너진다. 그래 히브리서 1장 3잘에 주님이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고 하셨다. 역대하 26장에 보면 유다 왕 웃시야는 26세에 왕이 되어 52년을 다스렸다. 하나님께 정직히 행하니 하나님이 도우셨다. 불레셋 사람, 아라비아 사람, 암몬을 처 영토을 크게 확장하였다. 저들이 조공을 받으며 형통했다. 농사를 좋아하여 물웅덩이를 많이 파고 가축과 농토와 포도원을 크게 확장하였다. 강한 군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잘되니 교만해졌다. 악을 행했다. 성전에 들어가 분향까지 하려고 했다. 제사장 아사랴가 하나님의 제사장 중 용맹한 자 80인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 갔다. 왕을 향해서 책망했다. 하나님께 분향하는 일은 왕의 할 바가 아니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했으니 하나님께 영광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웃시야 왕이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노를 발하니 제사장에게 노를 발할 때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했다. 문둥병이 이마에 생긴 것을 본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왕을 속히 쫓아냈고 하나님께서 치시므로 속히 성전에서 나갔다. 웃시야 왕은 죽는 날까지 문둥병자로 살았다. 반석이 되신 하나님을 떠나니 하나님의 전에서 끊겼다. 왕의 치리권도 잃었다. 아들 요담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죽었을 때 열왕의 묘실안에 안장되지 못하고 곁에 안장됐다. 하나님께 범죄하고 반석이신 하나님 신앙 떠나니 모든 것이 흔들렸다. 무너졌다. 건강의 터가 흔들렸다. 왕권의 터가 무너졌다. 왕의 장지도 잃고 말았다. 다윗은 반석이신 하나님을 믿었다. 32절 하나님 외에 누가 바위뇨,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 새시며 나를 온전한 곳으로 인도하신다 하였다. 그는 평생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 반석되신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어 주셨다. 안전했다. 강했다. 형통했다. 여러분! 여러분의 반석은 무엇인가? 건강인가? 사업인가? 재산인가? 자녀인가? 명예인가? 그 모든 것은 참 반석이 될 수 없다. 왜요? 다 지나간다. 흔들린다. 시든다. 무너진다. 우리의 반석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 신앙으로 반석이 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건강과 사업과 자녀와 아름다운 이름을 지켜주시므로 다윗의 형통함이 여러분의 형통이 되시기를 바란다. 여러분! 다윗처럼 빛되신 하나님, 방패되신 하나님, 반석이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섬기고 순종하시므로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한 다윗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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