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vSuh |
2014-12-30 12:06:16, 조회 : 2,790, 추천 : 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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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삼하 23:14-39)(011605)
신자는 누군가? 한 주에 한 번 생업을 쉬고 교회에 나와 다른 성도들을 만나 인사하고 예배드리고 식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인가? 편안하게 종교 생활하는 사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법을 어기지 않고 남보다 열심히 일해서 남부럽지 않게 살다가 누가 보기에도 촌수를 다해 장수하고 죽어 천국 가는 자인가? 만일 이런 신앙관을 지니고 사는 신자라면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전쟁과도 같은 사명을 다할 수 없다. 따라서 바울은 그의 아들과도 같은 디모데에게 네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였다. 또 생활에 얽매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라고 하였다. 또 에베소서 6장에서도 마귀와 그 어두움의 세력과 싸우는 영적인 전쟁을 하는 군인이라고 하였다. 오늘 본문은 불레셋과 싸운 다윗의 장수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사명을 위해 영전에 임한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 그 비결을 배울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싸움의 목표와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는 갔으나 그 땅에 정착하며 살고 있던 족속들을 다 몰아내지는 못했다. 하나님은 약속을 분명히 했다.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순종했을 때 승리가 보장된 전쟁이었음에도 힘들고 고생스러운 싸움을 원치 않았다. 게으르고 안일했던 결과는 하나님께서 예견하시어 경고하셨던 대로 그 남은 족속들이 가시가 되어 그들을 괴롭혔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였다. 그 이스라엘을 괴롭힌 적들 중에는 불레셋이 제일 강한 난적이었다. 첫 왕 사울도 그 불레셋과의 전투에서 생명을 잃고 말았다. 지금도 다윗이 사울을 이어 왕이 되었으나 여전히 그 불레셋과 싸워야 했다. 이 싸움에는 다윗의 많은 장수들이 참여했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이긴 다윗의 장수들은 한결같이 싸움의 목표와 목적이 분명했다. 그 싸움의 목표는 오로지 불레셋 군사였다. 그리고 그 목적은 싸움에서 이겨 왕 다윗을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전쟁에 승리해서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었다. 더나아가 영토를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된 우리의 사명도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다. 그 일은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가시면서 하신 말씀에 들어 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겠다. 예수님의 지상 명령과 약속은 가나안을 정복하고 차지하도록 명령하시고 함께 하시마 약속하신 하나님의 명령과 같다. 승리가 보장된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라 쉽지 않다. 고난은 원치 않고 편안한 삶을 원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복음 전하기를 원치 않는 성도들이 너무 많다. 그렇게 신앙이 강하지 못하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라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반드시 싸워야 한다. 전쟁과도 같은 사명을 위해 싸워야 한다. 본문의 다윗의 장수처럼 그리고 우리가 싸울 대상과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과 목표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 확장을 반대하고 대적하며 저지시키려는 악한 세력은 마귀와 사단이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 하였다. 따라서 신자에게 그리스도의 군사 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에게 원수와 적은 사탄이요 마귀요 악의 영이어야 한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의 원수인 사단과 마귀는 악한 지혜와 파괴의 능력에서 가히 능가한다. 정사와 지배자들이다. 권세 있는 힘 있는 자요 어두운 죄악 세상의 주관자이다. 따라서 아직도 세계에 많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수 없다. 체포되고 옥에 갇히고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이 대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우리 대적이 우리보다 더 강하다면 지혜롭다면 그 대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결코 다른 대적이나 원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군사에게는 오직 하나님 나라 확장을 집요하게 반대하는 마귀와 사탄만이 원수요 그의 유혹과 시험, 어두운 죄악과만 싸울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이 도우시고 주님이 함께 하시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할 수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리스도의 군사된 우리에게는 결코 사람의 원수나 적이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종교를 믿는 이까지 모두 전도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신자는 우리 사랑의 대상이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사탄과 마귀, 죄와만 싸워야 한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영역을 더 넓혀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왕이시오 구주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영화롭게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 살피고 할 일이 있다. 내게 혹시라도 원수 같은 사람은 없는가? 싸우고 있는 대상이 사단의 세력과 죄 대신에 형제자매는 아닌가? 이는 적과 싸우는 대신에 아군과 싸우는 어리석은 일이다. 그 결과는 모두 잘 안다. 한편은 사명을 외면한 채 교회를 진영을 떠난다. 진영에 남아 있는 편도 싸움의 상처로 부상병과 다름이 없으니 싸울 힘을 상실했다. 아군의 진영에 군사가 줄었다. 전체를 약화시킨다. 따라서 이 시간 싸움의 대상이 다른 신자였다면 회개하자. 제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지금껏 어리석게 미워한 형제자매를 사랑하게 해 주옵소서! 섬김의 대상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이제부터 함께 마음과 뜻과 힘을 합해 사단과 마귀, 유혹과 시험, 어두운 죄악과만 싸울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여러분! 우리 싸움의 대상과 목표는 마귀다. 우리 싸움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 확장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함께 싸워야 한다. 여기 다윗 왕의 신한들 모두 이스라엘의 군대요 이스라엘의 백성인데는 하나였으나 서로가 달랐다. 그리고 그 수도 37명이나 되었다. 이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용사들의 등급이 다름을 알 수 있다. 1급의 용사, 2급의 용사, 3급의 용사들이였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등급에 상관없이 목표와 목적에서 하나였다. 함께 싸웠다. 모두 불레셋의 군사와 싸워 능력대로 적을 소멸시켰다. 계급이 다르고 능력이 다르고 심지어 지파가 달랐다. 그러나 한결같이 하나되어 힘을 합해 적과 싸웠고 승리했다. 하나님의 군사된 우리의 승리 비결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모두 믿음에서 한 교회를 섬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에서 우리는 하나다. 그러나 사실은 다른 점이 더 많다. 신앙의 정도에서 그 연조에서, 직분에서 성품과 섬김의 정도에서 환경과 여유에서 모두 다르다. 일반적으로 한 교회의 교인들을 헌신의 정도에 따라 셋으로 분류가 된다. 10%는 적극적으로 교회를 섬기는 헌신 자, 30%는 주일을 지키며 맡은 일을 하는 신자다. 60%는 청중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다. 어찌보면 다윗 왕의 세 구릅 장수들과 비슷하지 않는가? 그런데 불레셋과 싸운 다윗의 장수들은 싸움에서 구별없이 하나같이 참여했고 그 결과 이길 수 있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사단과 싸우며 사역에 임할 때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함께 싸워야 한다. 참여하는데 있어서는 10%, 30%, 60%의 구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어느 퍼센테인지에 속한 성도이든 합심하여 함께 일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좋은 결과, 효과적인 결과를 얻게 하신다. 그렇다면 여러분! 스스로 나는 30%에 속한 신자다. 60%에 속한 신자라고 생각하지 말자. 나야 뭐 하지 말자! 적어도 모두 나는 10%에 드는 신자다. 신자일수 있다. 그런 마음과 자세가 필요하다. 왜요? 우리 하나님은 전쟁에 경험이 전혀 없는 소년 다윗을 들어 온 이스라엘 장수를 두렵게 하고 떨게 했던 불레셋의 거장 골리앗을 쓰러뜨리게 하셨다. 하나님을 믿고 용기로 싸움에 임할때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군사이며 우리가 하는 일, 우리가 싸우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여 그 일에 모두 참여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다. 금년 우리 교회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을 더하고, 새 일을 개척해서 하는 것이다. 그 일이 힘들고 악한 세력이 장애와 반대를 할지라도 함께 참여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도우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능히 이룰 줄 믿는다. 모두 참여하셔서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란다. 승리하려면 충성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군대, 다윗의 장수들이 어떻게 싸웠는지에 대해서는 13-17절의 말씀을 보아 짐작할 수 있다. 그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불레셋 사람의 영채는 베들레헴에 있었다. 다윗이 사모하여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한다. 지금 전쟁중이다. 불레셋과 대결하기 위해 진을 치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그때 다윗은 목이 탓던 것 같다. 그럴만했다. 이스라엘은 물이 귀한 곳이다. L. A와 비슷해서 비가 그렇게 많이 오질 않는다. 농사를 짓는데 거의가 다 갈릴리 호수, 요단강 물줄기에서 물을 끌어와 스프링클러로 한다. 지금은 물이 귀해 LA처럼 거의 다 병물을 사서 마신다. 아마 그때에도 좋은 우물이 드물었을 것이다. 그러니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 그 시원한 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갈망했을 것은 이해할만한다. 그러나 다윗 왕은 장수 중 어느 누구를 지목해서 말하지 않았다. 물을 떠오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독백 비슷하게 소원을 표현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16절을 보가. 세 용사가 불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다. 그러나 다윗은 그 물을 하나님께 부어 드리고 자신이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의 소원을 표현하는 일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왜요?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길어 온 샘물은 저들의 피와 마찬가지였다. 무엇을 가르치는 말씀인가? 저들 용사들은 다윗의 명령을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명령이 아닌 독백 같은 소원을 알아듣고 생명을 걸고 이뤘다.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해냈다. 거기에 충성이 있었다. 그것이 승리의 비결이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은 사실 모두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예배드리는 것, 성경공부도, 전도도, 봉사도, 헌금도... 그렇게 값지고 그렇게 중요하며 옳고 선한 일이고 하나님의 뜻이요 계획이요 소원이다. 그러므로 생명을 바침으로만 최선을 다할 수 있다. 사단과 마귀는 그것을 너무 잘 안다. 생명을 걸기 전까지는 항복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모두 이 다윗의 세 용사와 같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일, 사명을 위해 우리는 충성해야 한다. 충성이 무엇인가? 어느 선교사가 평생을 남의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말년에 교회가 없는 고향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 선배 선교사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저는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때 선배 선교사는 그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일 걸세. 고향 사람들이 당신을 조롱을 할거야, 돌을 던지지 않으면 기쁘게 여기겠습니다. 돌을 던질 것이네. 칼로 찌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기쁘게 여길 것입니다. 칼로도 찌를 것이네. 죽지 않는 것만으로도 기쁘게 여길 것입니다. 죽을 수도 있을 것이네. 복음을 위해 순교자가 되는 것을 기쁘게 여기겠습니다라고 했다. 충성을 확인한 선배 선교사는 그러면 가 보게!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교회를 세웠고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여러분 충성할 마음이 없으면 일을 맡지 말아야 한다. 충성이란 시작했다면 끝까지 맡은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된 우리는 어떤 일을 맡던 어떤 일을 함께 하게 되던 충성의 각오를 하고 시작해야 한다. 생명이 있는 한 변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잘할지라도 중도에 포기하면 그 일은 마귀에게 넘기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하나님의 기업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맡고 중도에 내팽겨쳐 버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실패자로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책에 기록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충성할 마음이 없으면 맡지 말아야 한다. 직분은 명예직이 아니다. 충성할 각오가 있을 때 직분을 맡아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일꾼은 에녹과 같아야 한다.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 바울처럼 선한 싸움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여러분 모두 그런 충성으로 금년에 맡은 일을 다 이루시기를 바란다. 승리자는 하나님이 꼭 기억하신다. 여기 다윗의 군인들은 그 장수의 등급이나 능력에 따라 그 전공에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모두 기록하셨다. 마지막 39절에 나오는 말씀은 이렇게 기록되었다. 헷 사람 우리아까지 모두 합하여 37명이라... 우리아가 누군가? 다윗 왕이 범한 밧세바의 남편이다. 다윗은 그의 간음죄를 숨기기 위해 애쓰다가 안 되니 그를 최전방에 내보내 적에게 맞아 죽게 했다. 그는 전공을 세우지 못하고 죽었다. 그런데 그 이름이 기록되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우리가 맡겨진 사명에 끝까지 가면 그것이 성공이다.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기록해 주신다. 요한계시록 20장 12절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으리라. 이 책은 우리 모두의 행적기록부다. 저는 그 책에 우리 모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마태복음 10장 42절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여러분! 금년에 전도와 선교, 교육과 건축, 사회봉사와 직분자로서 내가 맡은 일 그리고 사역부서의 책임을 하나님의 생명책에 내가 상급 받을 자로 기록될 수 있는 확실한 기회다. 어디가 내 자리인가? 그 자리를 찾으세요. 내 자리에 앉으세요. 그 자리 끝까지 지키세요. 그것은 전쟁 같은 어려움일 수도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마세요. 싸우세요. 그리하여 승리자로 생명책에 여러분에 이름이 기록되시는 기회가 되시기 바란다. 1759년 한 영국군 장교가 펜실베니아 베들레헴 근처에서 북을 치며 신병을 모집하고 있었다. 어느 날 모라비안교에 귀의한 인디언을 하나 만나 군인이 되고 싶은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아닙니다. 나는 이미 군대에(종사)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군 장교는 그렇다면 당신의 대장은 누구냐? 네, 저는 매우 용감하고 훌륭한 대장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는 살아 있는 동안 그를 섬길 것입니다. 나의 생명은 그의 손에 맡겨져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임을 잊지 말자.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마귀요 사탄이요 어두움이요 세력이다. 우리의 신앙을 지키고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다한다는 것은 이 악한 세력과의 전쟁이다.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승리가 보장된 싸움이다. 서로 격려하고 용기를 주면서 힘을 합해 맡은 일에 끝까지 충성하자! 그리하여 2005년은 여러분의 이름이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상급을 받을 자의 이름으로 생명책에 기록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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