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영혼이 살고 교회가 사는 길
  본문 : 마태복음 16:21-28
RevSuh  2015-02-22 21:10:53, 조회 : 3,358, 추천 :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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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살고 교회가 사는 길(마 16:21-28)(011115)

얼마 전 어느 신문(종교란에)이 교회의 사회 참여는 옳은가에 대한 찬반 양론을 실었다. 사회 참여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너희는 세상에 빛이요 소금이라는 말씀 자체가 사회 참여를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반대편에서는 교회의 목적은 복음을 전해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지 사회 참여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두 가지 견해와 입장에 다 일리가 있다. 따라서 어느 한 쪽만을 강조하거나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그 우선순위를 말하자면 마땅히 교회는 복음을 전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그리고 사회적인 책임을 말해야 할 것이다. 사실 복음의 능력은 개인 영혼 구원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과거 교회의 부흥의 역사를 보면 영혼의 구원은 사회 전체의 도덕적인 변화로 이어졌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 아닌가?
  그런데 오늘 이런 논쟁은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영혼 구원도, 사회 참여 어느 하나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왜 복음을 전하는데 듣지 않는다. 사회를 향해서 좋은 일을 해도 감동이 없고, 바른 말을 하는데 너나 잘하라고 반격한다. 오늘 신자와 교회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왜 세상과 불신자가 신자와 교회를 향해 불신하게 되었는가? 저는 신자가 신자답지 못하고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래도 주일만 되면 다수의 교인들이 교회에 나가는데 예배를 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교회가 신자가 다르지 못한가? 제 생각이다. 우리 신자들이 주일날 교회에 나와서 설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을 듣는 전부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다. 뭐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예배당 문을 나서면서 오늘 설교 제목까지 잊는다. 그래 하나님 말씀없이 세상으로 나간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경쟁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신앙을 잊고 내가 그리스도인이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고 의식없이 살아간다.  다름이 없다. 세상 사람들은 그래도 예수님을 믿는다니 그들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평가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나? 우리만 못하다! 교회는 신뢰를 잃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큰교회들이 큰 교회당 짓기 경쟁한다.  세상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호소를 해도, 교회내에서까지 그런 궁궐같은 교회를 지어야 하냐는 비판의 말이 있어도 귀를 막고 그냥 짓는다. 그러나 큰교회당을 짓긴 했는데 빚은 쌓이고 교인들은 떠나고 교회당은 매물이 된다.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은퇴를 하시면서, 교회는 주님의 몸된 교회인데 사유재산처럼 생각을 하고 경험도 없는 아들들에게 교회를 맡기는 것이다. 주님의 피로 형제자매가 됐는데 작은 문제를 가지고 서로 옳다고 하며 세상법정에까지 가며 갈라지는 것이다. 목회를 잘한고 하는 젊은 목사님들이 좋은 자리만 나면 교회를 옮겨간다. 이성에 문제로 교회를 사임하게 된다.이런 불미스런 일들이 매스컴을 통해서 삽시간에 퍼져나간다. 사실은 교회의 일부요 목회자 일부의 비리이지만 그것이 전체 교회로 확대된다. 그래 교회는 믿을 수 없고, 신자는 믿을 수 없다가 된다. 복음을 전해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새로 믿는 자는 드물고 교인들 중에는 교회가 나와 내 자녀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 섬김과 희생은 없이 내 유익만 바라는 교인들이 수평이동으로 큰 교회들은 부흥됐다고 한다. 결국 교인수의 감소와 무기력한 교회가 되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겠나? 어떻게 영혼을 살리고 교회가 부흥하고 하나님께만 아니라 세상을 향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나? 저는 한마디로 신앙의 생명인 거룩을 회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거룩한 하나님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시다. 모든 피조물과는 엄격하게 구별되신다. 완전히 다르시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죄로 불의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천국을 상속케 하셨다. 여러분! 우리가 가야 할 천국은 거룩한 곳이다. 거기에는 거룩한 하나님, 거룩한 예수님, 거룩한 천사, 앞서 간 거룩한 성도들이 있는 곳이다. 거룩이 없이는 하나님을 뵐수 없고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 게시록 21장 27절에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한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선택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셨다. 에베소 1장 3-4절에 찬세전에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다.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는 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이고 우리 신앙의 핵심이요 생명이다. 그런데 오늘 많은 신자들이 이 거룩을 상실했다. 죄가 지배하는 옛 사람의 구습의 삶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구습의 자아가 지배하는 삶을 산다. 변화되어야 한다. 구별되어야 한다. 어떻게 가능한가? 오늘 본문이 그 해답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나를 부인해야 한다. 여러분!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하실 때  놀란 베드로가 안됩니다. 십자가라니요? 부끄러운 십자가라니요. 왕의 영광을 취하셔야지요 했을 때 사탄아! 물러가라고 책망하시면서 주신 말씀이다. 그 고난을 통해서 천국의 영광에 이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라는 것이다. 베드로는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면 나를 부인해야 합니다. 나를 부인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 교회 역사를 보면 박해가 심했던 초대교회에서는 순교가 미덕이고 영광이었다. 그런데 박해받던 기독교가 거대한 강국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성직이 계급이 되고, 예수를 믿는 것이 육신의 삶에 도움이 되니까 수많은 이교도들이 교회로 몰려들면서 교회안에 이교적인 관습이 신앙의 관행과 뒤섞이게 되자 세속화되었다. 그래서 거룩한 신앙을 지키려는 사람들 중에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예정된 금세의 길을 포기하고 사막이나 동굴로 들어가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서 육신의 욕망을 부인할려고 했다.  그러면서 중세의 신자의 미덕과 영광은 수도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도사의 수가 많아지게 되면서 수도 생활도 경쟁이 되었다. 외형적으로 내가 더 거룩하고 영력이 있어 보이기 위해 고행의 강도를 높여갔으며 그 정도에 따라 스스로 등급을 만들게 되었다. 어떤 수도사는 온 몸을 땅속에 묻고 얼굴만 내놓고 살았다. 어떤 수도사는 죄질 생각이 날 때마다 맨 몸으로 가시덤불에 뛰어들었다. 어떤 수도사는 수십리 피트 장대 위에서 낮에 땡볕과 함께 추위를 견뎠다. 스스로 거룩하게 되려는 이런 수도 생활은 내 노력, 내 지혜, 내 힘으로가 되면서 내 의, 내 거룩, 내 공로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은혜 대신에 내가 한 것이 되니 자기 자랑의 교만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더 거룩하게 보이기 위해서 얼굴도, 몸도 씻지 않고 옷도 빨지 않았다. 먹지도 않고 잠도 잘 자지 않았다. 결국 30세만 되면 50세처럼 늙어 보였다. 이것이 자기부인이요 거룩이요, 영적인 능력인줄로 착각했다. 외식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신다. 우리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16절에서 너희는 금식할 때에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얼굴을 흉하게 하지 말라 차라리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하셨다. 참 경건을 원한다면 외식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외식을 경계할 수 있어야 하겠다. 그러면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의 뜻은 무슨 의미인가? 이 말에 뜻은 원래 어떤 것, 무엇은 나와 상관이, 관계가 없다는 것이요 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에베소서 4장 22절의 말씀대로 한다면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은 이제는 나와 관계가 없다. 그런 것은 내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세상이 추구하는 권리, 축복과 행복, 성공, 영광 그런 것은 내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실예를 마태복음 26장에서 예수님께서 내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셨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으셨다.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인성을 입으셨기 때문에 십자가는 무거운 것이요, 고통스러운 것이요 부끄러운 것이요 그리고 죄짐을 지는 것이요 혼자 지는 것이기 때문에 육신이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길에 늘어 선 군중들로부터 조롱과 멸시와 수모를 당하며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처형 장소까지 가야 한다.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으시고 따르던 제자들까지 다 도망치고 홀로 지시는 무거운 죄짐의 십자가! 육신을 입으신 우리와 같은 예수님은 감당할 수 없었다. 38절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다. 39절에 아버지여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렇습니다. 내 자신을 부인한다고 하는 것은 이런 영적인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부인하기 위해서 영적인 투쟁을 하시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고 은혜로만 십자가를 지실 수가 있으셨다. 따라서 우리도 나 자신을 부인하기 위해서 영적인 투쟁을 하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에 우리 자신을 부인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십자가라면 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이 있겠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십자가는 죽는 것이다.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십자가는 질 수 없다. 그러나 예수를 믿은 다음에
죄 용서함 받은 다음에 의로워진 다음에 짓는 죄에 대해서는 우리는 죽어야 한다. 어떻게 가능한가? 초대교회에서 배울 수 있는데 초대교회에서는 세례를 아주 중요시하였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회개를 하고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으면 구원받는다. 세례는 구원과 직결되는 것이다. 그래 세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세례는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를 사함받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러면 세례를 받고나서 모든 죄를 사함받고 나서 짓는 죄는 어떻게 하면 좋냐? 어느 교부가 이렇게 가르쳤다. 그 다음에는 단 한 번만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 초대교회 성도는 모두 그것을 믿었다. 그래서 세례 받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다. 세례받는 것을 늦췄다. 내가 죽기 전에 세례 받고 죄짓지 않고 주님을 만나면 좋겠다. 그래 초대교회 성도는 죄짓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고 세례받는 것을 두려워했다. 오늘은 어떤가? 회개하면 된다. 우리가 거룩을 회복하려고 하면 십자가를 져야 한다. 죄를 두려워하고 죄를 멀리하고 죄와 싸우고 그리고 죄질 생각이 날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단호하게 ‘no’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거룩해 질수가 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지속적으로 죄와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한다. 거룩과 성화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요한일서 2장 15절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삶을 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지 말아야 할 세상 것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이기는 것이고 버리는 것이다. 사실 이 세 가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고 생존에 필요한 것이다. 식욕, 성욕,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 소유에 대한 욕구, 지식과 명예를 지키려고 하는 야망도 필요하고 충족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욕정이 되면 신이 되고 그것을 섬기고 그것을 위해서 살게 된다. 식욕이 없으면 못 산다. 그러나 욕정이 되면 식탐이 되고 식도락에 빠진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것을 골라 먹기 위해 산다. 우리의 이런 욕구는 사탄이 부추기고 시험함으로 욕구가 욕정이 되고 정욕으로 죄를 짓게 만든다.  마귀가 하와를 시험한 것을 보면 선악과 앞에서 하와가 어떻게 되나? 선악과를 보니까 먹음직스럽고 - 육신의 정욕이다. 보암직스럽다-안목의 정욕이다.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다-이생의 자랑이다.  사실 이 세 가지는 따로 분리되어 있는 각자가 아니고 하나로 연계되었다. 다윗 왕을 보면 마음에 정욕을 품었다. 그리고 밧세바가 목욕을 하는 것을 보니 안목의 정욕이 생기고 그녀를 불러들여서 간음죄를 짓는다. 간음죄를 짓고 난 후 모든 백성이 나를 왕으로 알고 있는데, 모든 백성이 나를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군으로 알고 있는데 내 간음죄를 모든 백성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래 자기 명예를 지키려고 충신 우리야를 최전방으로 보내 살인죄를 짓고 만다. 모든 죄가 연계가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를 세상의 것과 세상을 사랑하게 만드는 도구는 눈이라고 생각한다. 안목의 정욕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T.V, 컴퓨터, 셀폰, 인터넷 이 모든 것을 자꾸 보게 되면 이 세상 것을 사랑하도록 부추긴다. 우리 신자들은 그런 곳에서 눈을 돌려 하나님 말씀을 보는데 시간을 드려야 할 것이다. 영화나 연속극 같은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나? 안 볼 수는 없지만 선별해서 보아야 한다. 불륜의 연속극같은 것을 성도들이 구별없이 즐기고 빠지면 우린 세상과 다를바가 없다. 배우, 탈렌트, 아이돌 가수들, 극에 나오는 호화스러운 저택 생활, 자동차를 자꾸 보면 외모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래 성형수술을 한다.  판단력이 흐려진다. 한국이 성형수술 세계의 제일이라고 한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한다. 명품으로 장식한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데 하나님없이 사람만 의식하고 산다. 타락한다. 우리는 속사람을 아름답게 가꿔야 한다. 유행따라 간다. 세상 풍조를 따른다. 추운 날씨에 떨어진, 구멍 뚤린 청바지를 입고 다닌다. 왠가? 세상 풍조따라 가는 것이다. 노예처럼 코고리까지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 얼바인 어느 교회가 새벽예배 후 개인 기도 시간에 어느 나이 많으신 여성도님이 너무 간절하게 기도를 해서 목사님이 본인 기도를 멈추고 끝난 다음에 기도해 줄려고 기다렸다고 한다. 그 성도님이 살려달라고, 죽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그래 이 목사님 생각에 참 가족 가운데서 중병에서 생사를 드나드시나보다 하며 그걸 몰랐구나 자책하면서 기도가 끝난 후 물었다고 한다. 식구 가운데 누가 그렇게 아프시냐고 했더니 연속극에 주인공이 죽으려고 한다고 하시더란다. 그게 하나님께 기도할 일인가 작가를 찾아가야지. 분별력을 상실하게 된다. 소유욕에 빠지면 일하게 된다. 누구나 부지런하고 정직하게 일해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일중독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면 하나님을 겸해서 섬길 수가 없는 것이다. 저는 교회 지도자들이 명예욕 때문에 많이 실패하는 사실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노회장들은 많지만 총회장은 하나다. 노회장 되면 총회장 될려고 한다. 경쟁을 한다. 투표를 한다. 정치권하고 똑 같다. 그런데 정치권은 법으로 돈 안 쓰게 법으로 만든다. 거기에 위배되면 당선 무효다.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게 못 한다. 얼마 써야 총회장에 당선되나? 3억 쓰면 떨어지고 5억 쓰면 붙는다. 여러분! 정치하는 사람들이 교회 정치를 보면 교회 지도자를 믿겠나?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교회들이 그것을 부추기는 것이다. 물론 총회장 되겠다는 분들도 문제가 있지만 교회들이 우리 교회가 적어도 이 교단에서 이만큼 큰 교회인데 총회장 나와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헌금 OK, 돈 써서 총회장 되는 것도 OK. 그걸 하나님 뜻으로 생각한다. 무엇이 세상과 다른 것인가? 세상보다 못하다. 그래서 어느 교단이 제비뽑기로 총회장을 뽑는다. 이 시대에 정말 부끄러운 일 아닌가?
종교다원주의와 개혁주의 대웅이란 소논문 안에 사진 여러 개가 들어 있는데 그 중 2013년 그러니까 W.C.C.대회가 부산에서 열리기 1년 전인데 그 때에 한기총과 교회협의회가 손을 잡고 W.C.C. 공동선언문을 발표하는 그런 장면을 찍은 사진인데 예장통합의 대표적인 목사와 합동에 대표적인 목사가 준비위원장의 자격으로 사진을 찍었다. W.C.C.라는 세계교회협의회는 지금은 교회협의회가 아니라 종교협의회다. 모든 종교는 같다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기독교로 개종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개종불가다. 기독교도 아니고 복음도 아니다. 그런데 복음적인 교단의 대표 교회 목사가 또 보수적인 개혁주의 교단의 대표되는 목사가 거기 찬성을 해서 그걸 지지해서 성명서에 사인하고 대표로 나선 것이다. 그 분들이 바본가? 아니지요. 왜 그렇게 되는 것일가? 높은 자리,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W.C.C.라고 하는 그런 대표적인 기독교의 기관에 한국의 대표 자리 그걸 탐하는 것이다. 신앙을 팔아먹는 것이다. 그런 분들이 교회를 이끌어 나가니까 예수 믿다가 불교로 가고 개신교 믿다가 천주교 가고 그러는 것이다. 전도할 필요가 뭐 있나? 다 구원받는데.. 참으로 조심해야 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데 제자들은 육신의 정욕과 이생에 자랑에 빠져 있었다. 세배대 아들들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절하며 주의 나라에 임하실 때 한 아들은 우편에 – 우의정, 다른 아들은 좌편에 – 좌의정 되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고 죽으시는데 제자들은 명예를 생각하고 자리를 생각하고 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고 하면 순종하는 것이 옳다. 못한다, 안한다며 빼는 것도 교만이다. 그런데 하고 싶은데 안 됐다면 하나님 뜻으로 알고 겸손히 기다리고 섬기다 보면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나? 네가 구하는 것을 모른다. 그러시면서 아버지 하나님이 누구를 위해 예비하셨든지 그가 누구든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여러분! 오늘 우리 신자와 교회의 위기는 세상과 불신자에게서 불신을 당하고 복음의 문이 막힌 것은 우리 자신과 전체 교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속히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나는 그런 목사가 아니고 우리 교회는 그런 교회가 아니니까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한다면 교회는 소망이 없다. 그 모든 것이 내 죄이고 우리 교회에도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책임을 지는 자세, 그리고 회개해야 소망이 있다.  우리 교회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 어떻게요? 세상 것을 사랑하지 말고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가야 한다. 그냥 예배당 뜰만 밟고 왔다갔다 하는 명목상의 신자가 아니라 참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빠지게 만드는 세상과 사탄의 세력과 대적해 싸워야 한다.
여러분! 주님의 제자가 되어 세상과 구별하는데 내게 장애와 문제가 되는 정욕은 무엇인가? 육신의 정욕인가? 안목의 정욕인가? 이생의 자랑인가?
우리가 2015년에는 내 문제를 안고 고민하고 싸우면서 해결하기 위해서 애쓰고 기도하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그 정욕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내 영혼이 살고 우리 교회가 살고 그리고 우리 사회를 살리는 그런 신자와 교회가 될 것이다.